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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울 수 없는 공허함, '뉴어벤져스' 탄생 비화

[리뷰] 영화 <썬더볼츠*>

25.05.08 14:56최종업데이트25.05.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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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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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휴 동안 가동하지 않은 뇌에 자극을 주기 위한 게임을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썬더볼츠*> 멤버 6명의 첫 등장 작품을 30초 안에 말해보시오. 나 역시 극장개봉 작품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봤지만 30초 안에 대답하기는 곤란한 문제다. 이유는 여럿이다.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를 제외하면 일단 드라마에만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고(워커), 서브 빌런으로 임팩트가 적었거나(고스트), 주인공을 돕는 조연(윈터 솔져, 레드 가디언)으로 비중이 낮다. 사실상 스토리를 이끄는 옐레나마저 본작을 통해 처음 주연급으로 발돋움한다.

물론 이름만 들으면 아는 헐크, 스파이더맨이 아니라도 낯선 캐릭터들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MCU 최고의 3부작으로도 꼽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 스타 로드, 가모라, 드렉스, 로켓은 이제 각각 충분한 서사를 가진 인기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썬더볼츠>는 <가오갤>보다 난이도가 높다. 0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존 작품의 세계관, 이미 구축된 캐릭터의 특징까지 살려야 한다. <썬더볼츠>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정석적인 문법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솔로 무비가 없는 <어벤져스> 급의 미션을 해결한다.

그림자의 핵심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영화 <썬더볼츠> 스틸컷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는 인생의 공허함을 토로하는 옐레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옐레나(플로렌스 퓨)는 블랙 위도우와 같은 전직 레드룸 출신이다. 그림자처럼 음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잠을 잔다. 취미도 없이 술에 취하는 걸로 하루를 마감하는 그녀는 언니처럼 따르던 블랙 위도우의 사망으로 상실감에 괴로워하지만, 고통을 나눌 사람은 없다. 결국 옐레나는 자신에게 임무를 주는 CIA 국장 발렌티나 드 폰테인(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에게 은퇴를 고한다.

발렌티나는 마지막 임무만 수행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역시 함정이었다. 불법 시험 의혹이 자행되던 옥스 그룹의 핵심 인물이기도 한 발렌티나는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은밀하게 이용했던 인물들을 모두 한 장소에 몰아넣고 서로 죽이려는 계획을 짰다. 그래서 옐레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처지의 인물들이 한 장소에 모이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로 선택받았지만 순간의 실수로 명예를 잃고 파면된 존 워커(U.S. 에이전트 / 와이엇 러셀), 에이바(고스트 / 해나 존케이먼)이 그들이다.

서로를 죽이려는 난투극 끝에 결국 발렌티나의 음모를 알아채고 탈출하고 여기에 소련 시절의 영광을 추억하며 살지만 지금은 볼품없는 리무진 기사로 전락한 레드가디언. 이 모든 고통을 먼저 겪어본 선배 버키(윈터 솔저 / 세바스찬 스탠)이 합류한다. 단절된 관계에서 오는 소외감, 정체성의 위기, 성취에 대한 강박과 불안은 썬더볼츠 멤버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겪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고민과 증상이기도 하다.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영화 <썬더볼츠> 스틸컷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새로운 캐릭터인 센트리 역시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옥스의 생체실험으로 탄생해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학대와 약물 중독으로 불안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것. 결국 발렌티나의 배신으로 센트리는 흑화해 보이드가 되어버리고 뉴욕 맨해튼 상공에서 나타나 정체불명의 그림자를 퍼트린다. 그림자에 닿은 인물들은 순식간에 소멸해 버린다.

독백과 더불어 오프닝은 옥스의 비밀 실험실을 급습하는 옐레나의 롱테이크 액션이 화면을 채운다. <올드보이>의 복도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면이나 측면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액션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옐레나는 복도의 빛을 받고 어두운 복도의 적들을 쓰러뜨린다. 문에서 멀어질수록 옐레나의 그림자는 길어져 결국은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주인공과 그림자가 구분되지 않는 풍경은 <썬더볼츠>가 주목하는 문제의식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표보다 어울리는 특수문자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영화 <썬더볼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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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에서 옐레나로부터 이어온 그림자는 결국 보이드가 만든 그림자로 현실화한다. 보이드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각자 갖고 있는 트라우마의 세계로 몰아넣는다. 첫 임무로 절친을 속여서 죽게 만든 옐레나. 파면된 후 고통받으며 가정에 소홀해 부인과 자녀가 떠난 존 워커. 썬더볼츠를 이용하고 위험에 빠뜨린 발렌티나 역시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된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옐레나는 과감히 보이드가 만든 그림자에서 자신의 수많은 트라우마를 뛰어넘고, 옐레나를 따라온 썬더볼츠 멤버들과 함께 센트리와 보이드의 본체인 밥을 찾아낸다. 밥의 트라우마 안에서 보이드는 멤버들을 공격하고, 분노한 밥은 보이드에게 그간의 분풀이를 하듯 무차별적인 폭행을 하지만 점차 보이드에게 잠식된다. 그렇게 공허에 잡아먹힐 순간 밥을 구한 건 보이드에 대한 썬더볼츠 멤버들의 응징이 아니었다. 썬더볼츠의 멤버들은 밥을 트라우마와 분리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도록 지지하고 믿음을 보낸 것이다.

보이드와의 전투가 끝난 뒤 썬더볼츠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바로 뉴어벤져스. 가진 거라곤 총과 주먹뿐이지만 어벤져스보다 강한 보이드에게서 뉴욕을 구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영화제목에 첨자 표시된 특수문자 *(애스터리스크)는 각주를 처리할 때도 쓰이지만 오타를 정정할 때도 활용된다. 오랜 시간 킬러로 손에 피를 묻힌 옐레나, 복수심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워커는 분명히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마침표로 남기는 대신 더 나은 삶을 향해 지금의 나를 변화시키려는 태도에 이보다 어울리는 특수문자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영화 썬더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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