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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이내 사망할 수도 있는데... 바이러스에 걸려 행복한 사람들

[리뷰] 영화 <바이러스>

25.05.07 13:45최종업데이트25.05.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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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바이포엠스튜디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바이러스>는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치사율 100% 바이러스에 감염된 번역가 '택선(배두나)'이 모태솔로 연구원 '수필(손석구)', 자동차 영업사원 동창 '연우(장기하)', 그리고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박사 '이균(김윤석)'까지 세 남자와 함께하는 예기치 못한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지민 작가의 소설 <청춘극한기>를 원작으로 한다. 연령대를 높여 소설과 다르게 각색한 영화는 2019년 10월 크랭크업했다. 5년의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되었지만 트렌드를 타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팬데믹 이전에 시나리오가 나와 촬영을 마쳤으나 미래를 예견한 듯한 이야기가 과거를 복기하는 재미가 있다. 보호복, 격리, PCR 검사, 손 씻기 등이 일상이 되어버렸던 과거가 저절로 교차되며 몰입감을 더한다.

핑크로 물들인 러블리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철저한 자료 조사와 자문으로 꾸려진 현실적인 설정의 충돌도 신선하다.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세트와 실제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기계들로 정교함을 높였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초고전압 투과 전자 현미경(H.V.E.M)은 국내 단 두 대뿐이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캠퍼스에서 촬영했다.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묘한 줄타기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는 사랑에 빠져 열병을 앓는 경로를 전염병의 발병과 같은 선상에 놓음으로써 행복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전한다. 앞선 <연가시>(2012), <감기> (2013) 같은 국가적 재난 상황을 다르게 해석했다. 사랑에 빠져 가슴이 두근두근, 얼굴은 빨개지는 이상 증세를 겪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오는 과정이 닮았다. 재난을 소재로 유쾌하고 몽글거리는 기분, 따뜻한 힐링을 앞세웠다.

혐오와 차별이 거듭되는 시대에 사랑스러움, 대책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어른 동화다. 택선은 톡소 바이러스 감염되기 전 까칠한 우울 모드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무채색 톤의 옷만 입는다. 의욕을 상실한 일상, 무기력은 가득하고 웃음 실종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감염 후 커진 동공과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해 괴롭다. 살짝 나사가 풀린듯한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사랑에는 치료 약이 없다. 더 사랑하는 것밖에'라는 말을 남긴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오른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낭만을 말했다. 인간에게 감정을 제거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타이밍, 고백 공격의 최후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바이포엠스튜디오

사랑은 엄연한 타이밍의 문제다. 상대방을 향한 호감 표시는 적재적소에 쓰여야 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는 하나, 일방적 고백을 밀어붙이는 수필의 구애는 공격,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아한다며 무조건 들이대는 상황은 자칫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 충동 행동, 호르몬 과다, 감정 과잉은 다 '감염 증상'이란 이균의 말로 무마된다. 상대를 바꿔가며 다양하게 펼쳐지는 블랙 코미디와 불편함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보는 게 관전 포인트다.

이색적인 설정은 고양이를 숙주로 삼는 실존 기생충 '톡소플라스마 곤디'에서 착안했다. 톡소 바이러스는 비말과 혈액, 배변을 통해 감염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며, 땀이 많아지고 환청과 환각에 빠져 사리 분별이 쉽지 않다.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길 경우 24시간이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토록 심각한 상황이지만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저 행복하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찾아온 변화는 모두를 성장하게 만들어 준다. 택선은 이유 없이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증상이 바이러스 때문인지, 정말 사랑에 빠진 건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웃음을 준다. 열린 결말의 여운은 열병이 지나간 후 항체가 생긴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태어나 처음 맞아보는 긍정적인 기분, 살아 있음을 확인한 생동감을 잃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
영화 <바이러스> 스틸컷㈜바이포엠스튜디오

부작용 없는 우울증 치료제의 연구에 매진한 이균의 노력은 인류가 바라는 염원 중 하나다. 그가 발견한 톡소 바이러스와 감염된 인간, 슈퍼 항체의 등장은 한편의 우당탕탕 소동극을 만든다. 수많은 인류의 사망 이후 질병을 정복한 역사가 반복되어 온 것처럼 훗날 이균의 성공이 현실이 될 희망찬 날을 기다려 본다.

간혹 '평소와 다르게 왜 이러지?' 싶다면 <바이러스>가 떠오를 것 같다. 인류 탄생과 함께한 사랑을 소재로 배두나, 김윤석, 손석구의 안정적인 연기와 날 것의 연기를 펼친 장기하의 케미가 의외의 시너지를 이룬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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