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
디오시네마
영화가 전혀 내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이들이 사는 세상에 상존하는 중하고 급한 일들이다. 경제와 산업, 정치와 문화, 쇠락하고 무너지는 온갖 것들을 이 영화는 철저히 배제한다. 그 부재로써 존재를 드러낸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건 대부분 어렵고 고단하다. 때문에 이와 같은 일에 매진하는 일을 나는 대단하다 여긴다. 이를 피해 안온하게 사는 걸 현명하다 말하는 낡아버린 늙은이들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널리고 널린 세상이다. 기득권을 틀어쥐고 세상을 갈수록 몹쓸 곳으로, 희망 없는 무엇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어디에나 가득하다.
내가 젊음에 기대하는 게 있다면 어렵고 고단한 무엇과 기꺼이 맞서 귀한 무엇을 이뤄내는 일이다. 잘못 흘러가는 세상의 물줄기를 돌려내고, 쉽지 않은 과업을 이루려는 이를 나는 빛나는 눈길로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를 낭만이라고들 말한다. 그것은 자주 용기와 의로움, 열정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젊음이 이와 같은 가치에 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혁명과 예술과 저항 가운데에 젊음이 있는 이유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뜨거움이 삭제된 젊음을 그린다. 혁명도 예술도 저항도 없는 도시를, 삶을 보인다. 이곳에선 사랑도 섹스나 발화되지 못한 욕망쯤으로만 남아 있다. 젊은이는 도시에서, 일터에서, 심지어는 가정 안에서도 격리되고 기생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시시한 무엇으로 늙어가는 것 같다. 이런 삶도 그대로 가치 있는 젊음이 아니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를 장님보다 더 눈먼 이라 여길 테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가 수많은 청춘스케치와 선명히 갈라서는 지점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가. 단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며 공동체, 법과 제도, 주류의 것들 따위로부터 완전히 격리돼 어떠한 접촉도, 변화도 도모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 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다. 그 희망없음이 미야케 쇼가 바라본 일본의 현실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청춘영화라기보단 고발영화에 가깝다. 부재로써 말하는 통렬한 고발이다.
2020년 작 영화는 한국 첫 개봉 당시 거의 관객이 들지 않았는데, 그가 한국에서 완전한 무명이었던 탓이다. 그리하여 배급이 얼마 이뤄지지 않은 탓이고, 영화 자체도 관객에게 호소할 만한 선명한 특장점을 얼마 갖추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미야케 쇼는 이후 찍은 두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새벽의 모든>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와일드 투어>에 이어 올해 한국 관객들과 새로이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가 보여준 풍경이 한국에 던지는 울림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건 한국의 관객들 또한 세렌디피티 북스의 사례가 이례적 기적이며 우리 주변에선 벌어지지 않을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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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