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11살이라는 나이, 이제 막 10대라는 문턱에 들어서 사춘기라는 터널을 통과하고자 준비하고 있을 그 나이에 엄마 없이 하나밖에 없는 아빠가 자신을 대놓고 버리려 한다. 극 중 시릴의 얘기지만 누군가의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아빠는 자전거를 팔아 급전을 마련했다, 그것도 시릴이 가장 좋아해 마지않는 자전거를 말이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빠한테 눈앞에서 절연을 당한다는 것,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니 널 더 이상 키울 수 없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는 부탁 아닌 협박 말이다. 어린 시릴에겐 존재를 부정당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에 향응하는 행동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안타깝다는 말로 그칠 게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부모라면 응당 자식을 키워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힘들다면 도움을 청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시릴의 아빠는 시릴에게서 도망치고 찾아온 시릴을 내쫓는다. 그런데도 특별한 제지를 받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버리는 게 '개인의 자유'를 발현하는 거라고 말하진 않겠지 싶다가도 관련되어 정부의 규제가 없거나 나이에 따라 규제의 차등을 둘 수도 있겠다 싶다. 정말 그렇다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타파하는 개인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사만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주인공이라서만은 아니다. 그녀는 시릴의 동네 미용실을 운영하는 젊은 처자인데, 그야말로 우연히 맞닥뜨린 시릴의 사연을 듣고 그에게 자전거를 되찾아 주고 주말 위탁모를 하며 아빠에게까지 같이 찾아가 준다. 뿐만 아니라 시릴이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게 지도하기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천사 같은 캐릭터다. 과연 현실에서 그녀 같은 사람이, 비슷하기라도 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더욱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말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비칠 수도 있겠으나 이 동화 같은 영화에선 그저 대단하고 고맙고 예뻐 보일 뿐이다.
결국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시릴의 아빠가 아들을 버리는 행위 자체는 개인적이지 않은가. 이후의 대처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비화된 것이고. 한 사람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한 사람을 살려내는 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퍼져나갈 것이다. 연쇄 작용을 일으켜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하여 <자전거 탄 소년>에서 시릴이나 사만다는 극 중에선 지극히 현실적인 동시에 극 밖에선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적합한 캐릭터다. 사회파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화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공유하기
소년의 자전거 팔아버린 아빠, 11살 아이를 구원한 한 사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