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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에 실린 사람, 인생 보며 깨달은 한 가지

[리뷰] 연극 < 2호선 세입자 >

25.04.18 14:51최종업데이트25.04.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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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너랑 만나는 거 구질구질해서 쪽팔려."

극장에 들어와서 한숨 겨우 돌리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자동으로 연극이 시작했다. 지난 12일 서울 바탕골소극장에서 본 < 2호선 세입자 >의 첫 대사는 여자배우가 지하철에 남자배우를 남겨두고 떠나면서 하는 말이었다. 취업에 실패한 남자배우는 여자배우를 쫓아가지 않았다.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 2호선 세입자 >는 지하철 2호선 열차에 숨어 사는 세입자들과 이들을 쫓아내야 하는 계약직 역무원 청년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따스하게 담는다. 동시에 사람들의 불확실한 삶을 조명한다.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다소 비현실적인 등장인물들의 과거 사연을 소개하면서 삶이란 결국 재밌는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풍전등화같이 위태롭지만 현실의 고난과 불행을 잊은 듯 노래를 부르고 춤춘다.

개인적으로 앞서 퇴장한 연인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봤다. 떠나는 이라고 해서 마음이 후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아는 짧은 이별의 순간에 계속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민아는 선글라스 뒤로 울고 있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함께 한 연인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할 리가 없으니까. 처음 만난 사람과도 잘 들어가라고 인사를 하는 게 보통의 경우니까. 만약 민아의 독백이 이어졌다면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거라 짐작해 본다.

'문을 나서고 셋을 세면 아마 내 뒤에 호선이가 서 있겠지. 내 손을 잡고 다시 잘해보자며 미안하다고 할 거야. 하나, 둘...둘 반, 둘 반의반, 셋. 허...없어. 이제 정말 끝이구나'를 혼자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엇갈림의 미학

인생은 엇갈림의 연속이다. 마음대로 되는 건 이 세상에 잘 없다. 비가 와서 입고 싶던 흰색 바지를 입지 못하거나, 기껏 서 있던 맛집 줄이 내 앞에서 마감되거나.

여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남자, 남자가 따라올 줄 알았던 여자는 과연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을 거다. 취업 때문에. 그놈의 돈 때문에. 극이 진행되면서 호선은 인턴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바쁘다. 민아는 까맣게 잊는다.

그러다 우연히 민아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긴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인생의 쓴맛을 느낀다. 남들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맘대로 되는 게 없을까. 견딜 수 없는 삶의 변덕에 몸부림친다. 민아는 과연 다른 남자와 행복했을까?

민아도 처음에는 호선이 실연에 괴로워하는 만큼 불행했을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 '내가 그렇게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라며 후회했을 수도 있다. 지하철을 탈 때면 호선이 어디선가 나타나 놀래주지 않을까 기대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 2호선 세입자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부 불확실한 삶을 산다. 역장, 알코올 중독 남편, 그리고 민아도 예외는 없다. 이 연극에서 민아는 가장 먼저 지하철에서 탈출한다.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삶의 명제를 빨리 깨우쳤다는 것을 암시한다.

민아가 새로운 사랑과 행복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이 연극이 말하는 인생 방식이다.

때론 그대로 흘려보내도

 지하철 문틈에 끼인 할머니의 우산.
▲지하철 문틈에 끼인 할머니의 우산.김민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내릴 역을 깜빡 잊은 할머니께서 지하철 문틈 사이로 급하게 우산을 비집어 넣지만 결국 내리지 못하셨다. 우산을 힘껏 잡아당겼지만 단단히 끼어버린 우산은 빠지지 않았다.

비닐우산 하나 때문에 할머니의 지하철에서 내린 이후 일정이 엉켜버린 듯했다. 이번 역에서 문이 열리지 않자, '다음 역까지 기다려볼까'하며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나 문은 또 반대편에서 열렸다. 할머니는 우산을 꺼낼 수 없었고, 빈손으로 하차했다.

인생은 정말이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붙잡고 싶던 사람도, 원하는 직장도, 할머니의 우산도 놓친다. 나를 떠나는 모든 것들에 미련이 철철 넘친다.

그런데 그리움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 '그렇구나' 하며 떠나보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긋남이 쌓여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그리움이 모여 추억이 됐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내리려던 역에서 못 내렸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다음 역에서 문은 반드시 다시 열린다.



인생 지하철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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