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플러스 <허식당>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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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관계는 약소국이 강대국을 섬기는 국제관계였다. 힘의 차이가 현격하면 두 나라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차이가 그보다 적으면 조카와 백부·숙부의 관계, 차이가 더 적으면 동생과 형님의 관계로 의제됐다. 조선이 1627년의 정묘호란을 계기로 후금과 형제관계를 체결했다가 1637년(1636년 아님)의 병자호란을 계기로 후금의 후신인 청나라와 부자관계를 체결한 것은 정세변화에 따른 역학관계의 유동성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한무제로 간칭되는 한나라 무제(재위 BC 141~87) 이후로 정착된 한민족과 중국 한족의 사대관계가 한민족에게 가장 불리했던 시기는 조선시대다. 요동정벌과 자주외교를 표방한 정도전이 1398년에 실각하고 명나라의 지지를 받는 이방원이 집권한 뒤로 두 민족의 사대관계는 역대급의 관계로 심화됐다.
이 관계로 인해 피해를 본 인물 중 하나가 광해군이다. 선조 임금이 그를 세자로 책봉했는데도 명나라는 세자 책봉에 대한 승인을 이례적으로 지연시켰다. 광해군은 끝내 승인을 받지 못했다. 임진왜란 파병을 계기로 명나라의 영향력이 강해진 데 따른 결과였다. 훗날 광해군이 중립외교로 돌아선 것은 명나라의 승인 지연이 초래한 뜻밖의 결과 중 하나다.
조선 국내 법령에 따라 합법적인 세자가 됐으므로 명나라의 승인이 없어도 세자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의 승인이 없었기에 명나라를 상대로 조선 세자 지위를 내세우는 데에 지장이 따랐다. 이로 인해 광해군의 국제적 지위는 유동적이 되고 그를 지지하는 개혁세력의 입지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조 임금이 죽기 직전에 광해군의 정적들은 어린 영창대군을 앞세워 광해군의 후계자 지위를 위협했다. 명나라의 갑질이 이 현상의 밑바탕에 있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나타난 그런 사대관계를 목격한 사람들의 정서가 완판본 <홍길동전>에 분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 사대하지 않는 율도국의 위상이 강조된 것은 중국과의 사대관계에 대한 개혁세력의 불만과 맞닿는 것이었다.
율도국에 대한 동경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작동하던 시절에, 중국과의 사대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별세계의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을 섬기지 않은 율도국에 대한 동경은 기존 질서와는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이상국가에 대한 염원과도 무관치 않다.
율도국은 사대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동시에 과도한 억압이 없는 나라였다. 완판본 <홍길동전>은 홍길동이 율도국에 욕심을 낸 또 다른 이유를 "수십 대를 이어오면서 덕화(德化)를 베푸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했다"는 말로써 부각시킨다.
율도국은 지도자가 군대를 동원해 힘을 과시하는 국가가 아니었다. 힘으로 세상을 눌러 보려는 패도(覇道)의 나라가 아니었다. 또 냉혹한 법률에 의존하는 법치 일변주의의 나라도 아니었다. 이 나라는 덕으로 굴러가는 덕치의 나라였다. 그래서 홍길동이 그 나라에 탐을 냈던 것이다.
홍길동을 매료시킨 율도국은 신분차별 해소나 물질적 풍요에 더해 독립성과 덕치 시스템도 갖춘 국가였다. <허식당> 속의 허균은 신분차별이 없다는 점과 물질적으로 풍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잠시나마 대한민국을 율도국으로 착각했다. <홍길동전>이 상상한 율도국은 <허식당> 주인공이 상상한 나라보다 훨씬 근사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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