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JTBC
반면 '협상의 기술'은 명확한 T(문제 해결성)의 드라마다. 치열한 숫자놀음인 기업 M&A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것부터 이 드라마는 감정보다 이성이, 합리적인 두뇌 플레이가 필요한 드라마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 M&A라는 어려운 소재가 시청자들에게 먹힐까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거장 안판석 감독은 이 소재와 더불어 '사내 정치'에 매달리는 기업 임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풍족한 법인카드로 값비싼 식당에서 식사하고 기사 딸린 고급 차를 타고 다니지만 실적으로 말해야 하는 기업 임원들은 실상 '파리 목숨'에 가깝다. 특히 극의 배경인 산인 그룹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기업일수록 2년 계약직인 임원들은 자리 보존에 혈안이다.
'하얀거탑' 이후 18년 만에 정치 드라마를 선보인 안판석 감독은 놀랄 만큼 디테일한 부분까지 묘사한다. 건설로 회사를 키운 산인 그룹 송재식 회장(성동일 분)은 임원들을 대할 때 거침이 없다. 소소한 실수는 넘겨도 M&A팀장 윤주노(이제훈 분)에게 "네 할 수 있나" 할 때나 "사라"고 말할 때는 몇백억, 몇조 단위까지 척척 맡긴다.
산인레저 소속 윈드가 상장하지 못해 언론의 비판을 받자 오치영 대표(정석용 분)를 불러 조인트를 깔 때는 전전 정권에서 조인트 당한 모 방송사 사장과 아들을 위해 야구 방망이를 든 모 기업 회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협상의기술'을 보며 거센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도 했다. 지난 23일 방송된 8회분에서 이동준 CCO를 밀어내기 위한 밀실 회의 장면을 보면서다.
송재식 회장의 친구인 이동준 CCO는사내 상장 담당이다. 그는 윈드의 상장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받자 상장을 미룬다. 하지만 이 사실을 상사인 송 회장에게 보고하지 못했고 송 회장은 오 대표를 거세게 질책한다. "나는 이동준 상무님을 배신할 수 없다"던 오 대표는 이 상무의 사내 라이벌이자 차기 회장 자리에 대한 하태수 전무(장현성 분)이 꼬임에 넘어가 이 상무 책임론에 거수한다.
기름기 흐르는 사내들의 무책임한 얼굴을 보며, 과거 함께 일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강자 앞에서는 간이라도 내줄 것 마냥 손바닥을 비비고, 동료들에게는 거침없이 말을 바꿨던 그는 하태수와 놀랄 만큼 닮았다.
그런 하태수 같은 인간의 손을 잡고,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오치영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드라마를 보던 그날 밤, 거센 분노 때문에 숨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런 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윤주노의 활약으로 이상무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안타깝게도 나는 윤주노가 아니다. 항상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그에 비해 나는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드라마 속 윤주노는 "이 M&A가 끝나면 나는 잘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나는, 나의 전 직장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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