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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옆에서 박보검이 그런 이유, 제주 사람은 다 압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속 제주, 육지 사람은 모르는 몇 가지

25.03.19 15:04최종업데이트25.03.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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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넷플릭스

(*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주서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나는 게 낫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극 중 주인공 애순(아이유, 문소리 분)가 하는 말입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여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얼마나 고생하고 살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잘 보여준 드라마입니다. 극중 애순과 그의 어머니 광례(염혜란 분), 딸 금명(아이유 분)로 이어지는 그들의 삶은 보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짓게 만듭니다.

제주도민들은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아련한 시절의 추억과 함께 가난하고 배고팠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합니다.

해녀, 돌밭, 그리고 허벅

 (좌)애순이 엄마가 진주목걸이를 빌리려고 밭을 대신 갈아주고 있다. (우)용천수에서 허벅에 물을 담고 있다.
(좌)애순이 엄마가 진주목걸이를 빌리려고 밭을 대신 갈아주고 있다. (우)용천수에서 허벅에 물을 담고 있다.넷플릭스

해녀들은 물질만 하면 일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밭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장에 나가서 해산물이나 농작물도 팔아야만 했습니다. 제주 여자들이 억척스럽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 목숨을 걸고 물질을 하면서도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애순의 어머니는 학교에 찾아가려고 시댁의 밭을 갈아주고 진주목걸이를 빌립니다. 돈이 없으니 몸으로 대신한 것입니다. 애순이는 어머니가 죽고 나자 새아버지의 간청에 못 이겨 동생들을 돌보며 밭을 일굽니다. 이때 애순이를 돕는 관식이는 연신 돌을 나릅니다. 땅에 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주에 돌담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밭에서 돌이 많이 나오니, 밭 주변에 쌓아 동물이나 바람의 피해를 막은 겁니다.

지금은 제주 삼다수라고 유명한 생수가 있지만 과거 제주는 섬인 탓에 지독한 물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식수는 해변가 근처 용천수에서 떠올 수 있었는데, '허벅'이라고 물항아리를 지고 떠와야 했습니다. 제주에선 초등학교에 가기도 전에 아이들이 허벅에 물을 담아 집에 있는 항아리에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제주-부산을 오갔던 '도라지호'

 (좌) 드라마 속 도라지호. (우) 실제 제주와 부산을 오갔던 여객선 '도라지호'
(좌) 드라마 속 도라지호. (우) 실제 제주와 부산을 오갔던 여객선 '도라지호'넷플릭스

애순과 관식이가 부산으로 야반도주할 때, 관식이가 육지로 떠날 때 탔던 배가 '도라지호'입니다. 극 중 도라지호는 실제로도 제주와 부산을 오갔던 여객선의 이름입니다.

1960년대에도 제주와 김포를 오가는 대한항공의 정기 노선이 있었습니다. 1967년 항공기 운임이 6700원, 그때 짜장면 한 그릇이 40원이었으니 일반 제주도민들은 너무 비싸 엄두도 못냈습니다. 그래서 도민들은 육지에 나갈 때는 대부분 여객선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목포를 오가는 쾌속선은 6시간이면 육지에 도착했지만 500톤급으로 규모가 작았습니다. 973톤급 도라지호는 부산에 12시간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도라지호의 취항으로 제주의 해상물류는 엄청나게 발전합니다.

밖거리-안거리... 그리고 괸당

 애순이가 결혼하고 사는 시댁
애순이가 결혼하고 사는 시댁넷플릭스

결혼을 하고 처음 애순이와 관식이가 살았던 집을 보면 양쪽으로 각각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제주에선 안거리, 밖거리라고 부릅니다. 보통 자녀들이 결혼하면 부모들은 밖거리에 살고 자녀들이 안거리에 삽니다.

같은 집이지만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정지(부엌)이 있어 대부분 밥을 따로 차려 먹습니다. 제사나 잔치, 생일 때나 같이 식사를 하지 평상시에는 별도로 살림을 합니다. 나중에 애순이와 관식이가 따로 나가 월세를 내고 살던 집도 집주인이 밖거리를 임대해준 것입니다.

애순이와 관식이가 월세를 내지 못하자 집주인이 "3개월 치 월세를 누가 내줬다"면서 "너희 괸당에 도씨가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괸당은 제주에서 말하는 친척을 뜻합니다. 실제로는 애순이 새어머니가 '도의적으로 주는 장학금'이라며 돈을 주자 보청기를 뺀 집주인이 '도희정'이라고 잘못 쓴 것입니다.

제주에서 괸당은 단순히 친척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힘든 생활을 지탱해 주는 혈연·인연 등을 모두 어우르는 말입니다. 제주는 겹부조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등 아는 사람 모두에게 부조합니다. 독립적인 생활 방식인 동시에 적은 돈이라도 도와주는 풍습인 셈입니다.

어촌계장이라는 자리

 애순이가 어촌계장이 되자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애순이가 어촌계장이 되자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벌어졌다넷플릭스

애순이가 어촌계장이 되자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열립니다. 어촌계장이 뭐 그리 큰 직함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제주와 같은 섬에서의 어촌계장은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극 중에서 선장이자 도동리 어촌계장인 부상길(최대훈 분)은 관식이가 배를 타지 못하게 하거나 해녀들의 좌판을 뒤엎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합니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을 어촌계에서 수매하기에, 어촌계장 눈 밖에 나면 좋은 가격을 받지는 못합니다.

극 중 애순은 해녀가 아무리 많아도 여자라는 이유로 번번이 어촌계장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 경선을 통해 성산어촌계에서 여성 어촌계장이 선출됐습니다. 애순은 어촌계장이 되자 어머니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섬에서 어촌계장이 된다는 것은 지역 유지로 성공했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제목인 '폭싹 속았수다'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애순이가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 주변에 누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쌀이 떨어질 때마다 몰래 쌀독에 쌀을 채워주는 집주인, 출산할 때 힘들게 딴 전복을 갹출해서 준 해녀들, 평생 국밥을 팔아 번 돈을 손녀에게 건네준 할머니, 애순의 월세를 몰래 내준 새어머니, 힘들지만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한 관식이.

집주인은 애순에게 '고치 가라'고 합니다. 죽고 싶어질 정도로 힘들 때 혼자서는 못 가지만 같이 가면 백 리 길도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척박한 땅 제주에서 함께 돕고 살았던 도민들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잘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다만, 도민들이 쓰지 않는 제주어나 어색한 사투리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깁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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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언론 '아이엠피터뉴스'를 운영한다. 제주에 거주하며 육지를 오가며 취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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