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 스틸컷
쇼박스
역사는 간도참변으로 죽은 조선인이 3000여 명에 이른다고 기록한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피해는 기록한 것보다 훨씬 컸을 게 자명하다. <암살>에서 카와구치를 죽이려 하는 안옥윤 또한 간도참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그녀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한 독립운동가의 딸로 그려지는데, 제 어머니의 암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유모에 의해 만주로 옮겨진다. 그러나 유모는 이후 간도참변에서 일본군에게 총에 맞아 죽고, 안옥윤은 수많은 이들이 끔찍하게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목격한다.
이처럼 <암살>은 3·1운동 이후 이뤄진 일련의 사건 위에 세워진 이야기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일제가 벌인 간도참극, 독립군을 동원한 전투수행 대신 암살작전으로 전개된 무장투쟁의 변화를 모두 반영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존재했던 밀정의 존재와 그것이 낳은 폐해 또한 소재로 활용한다. 실재했던 역사를 있는 그대로 혹은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하는 대신,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전면적 창작을 감행한 흥미로운 시도다.
장르적 상업영화 연출에 탁월한 자질을 발휘해 온 감독 최동훈이다. 그가 전지현과 하정우, 이정재, 조진웅, 오달수, 이경영, 조승우, 김해숙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다수 기용해 찍어낸 독립운동 영화는 10여 년 전 한국영화가 서 있던 대중적 관심과 영화적 역량, 창작의 활기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확인케 한다. <암살>이 있고 꼭 1년 뒤 김지운의 <밀정>이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두 작품은 각기 1270만 명과 7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모두 손익분기점을 상회했다.
꺼져가는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
▲영화 <암살> 스틸컷
쇼박스
흐른 시간은 10년 안팎이지만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을 바라보는 평가는 전과 같지 않다. 2022년 <영웅>은 327만 명, 지난해 <하얼빈>은 490만 명의 관객을 모았을 뿐이다. 두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뼈대로 약간의 극적 변주를 감행했다. 제작 일선에선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이 별다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때문일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간 수준급 각본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비단 문화예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관심을 두고 때때로 후원하는 몇몇 독립운동 및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관계자를 마주할 때면 최근 몇 년간 독립운동에 관심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푸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각종 기념사업이며 제작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생존에 직결되는 후원까지 급감하고 있단 소식이다. 무엇보다 이런 단체를 후원하는 층이 대체로 고령에 접어든 기성세대이고 보면, 독립운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1000만 관객 모은 독립운동 영화의 가치
▲영화 <암살> 포스터
쇼박스
영화가 나온 당시만 해도 <암살>은 흥행성적에 비해 아쉽다는 평을 많이 받아들었다. 각별히 빛나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이르는 화려한 전작들에 비하여 <암살>의 짜임새며 흐름이 다소 아쉬웠던 탓일 테다. 총기를 잃고 재기만 남은 듯한 각본과 연출이 눈에 밟히는 것도, 장점이던 선명한 캐릭터가 더는 새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단점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암살>은 다시금 조명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건 독립운동을 그저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흔한 방법에서 그치지 않고 창작을 위한 재료를 발굴하는 장으로 활용한 자세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익히 영화에서 다뤄진 적 드문 간도참변을 캐릭터의 전사로써 인상적으로 활용해 역사적 반영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자세라면 일제강점기 전체 기간 가운데 수많은 이야기를 발굴해 영화화 하는 것이 가능할 테다. 다수 대중이 충실히 알지 못하는 소재를 바탕으로 말이다.
또한 활약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한 독립운동가 김원봉이며 실제 전선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전월순, 이화림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렇다면 <암살>이 이룬 성취가 충분하다 하지 않을까. 일제의 폭압과 민족적 저항의 의미를 되새기는 3·1운동 기념일에 <암살>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손가락 세 개의 의미... 3·1절에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