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포스터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근 십수 년 간 한국사회가 내놓은 영화 가운데 정면에서 이와 같은 모습을 다룬 작품을 찾기 어렵단 사실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정돌이> 정도가 대학교 내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다루었을 뿐, 상업영화 가운데선 청년의 사회참여와 혁명에의 열망을 다룬 작품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6월 민주항쟁을 다룬 < 1987 > 정도가 있겠으나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외연적 맥락을 따라 달렸을 뿐, 학생사회와 젊은이의 현실에 깊이 다가선 작품이라 보기는 무리가 따른다. 심지어 이승만 정권 시절을 다룬 영화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역사를 곱씹는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이런 관점에서 <몽상가들>은 한국 영화계가 살필 만한 작품이다. 역사, 또 사회며 문화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졌으나, 체제를 개혁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서구의 68혁명을 남다른 관점에서 풀어낸 독창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명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2005년 작 영화는 68혁명을 다루는 보편적 방식으로 벗어나 당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급변하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세 청춘
흔히 <몽상가들>은 68혁명으로부터 떼어내 볼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막상 영화 속에서 혁명과 연계해 볼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1968년 파리 학생폭동이 영화의 끝에서 잠깐 등장하는 게 전부일 만큼, 샤를 드 골 정권의 실정이며 그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 얼마 조명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사회상과 떼어놓지 못하는 것은 영화가 당대의 분위기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내면을 드라마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놓치지 않고 깊이 응시하는 덕이다.
미국인으로 어학연수차 파리에 유학 온 매튜(마이클 피트 분)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광인 그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에서 이사벨(에바 그린 분)과 테오(루이 가렐 분) 남매를 만난다. 영화예술에 관심이 크다는 공통점으로 급속히 가까워진 이들은 함께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 세 사람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영화와 정치, 혁명에 이르기까지 바깥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논하며 서로를 탐닉해가는 이들의 모습을 영화는 매혹적으로 포착한다. 평생 자기 자신에 집중해온 개체가 자기 바깥의 다른 누구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탐닉할 수 있다는 건 그저 우정이며 열정이란 표현만으론 설명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사랑이란 표현이 어울릴 테다.
세 사람이 빚어내는 특별하고 기묘한 균형과 그들의 세계 바깥에서 이미 흔하고 일반적인 연인이란 관계 사이를 이들은 위태롭게 오간다. '금지하는 걸 금하'고 '열정을 해방하'며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한다는 영화 속 혁명적 구호가 기성세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평범한 열정으로 전락하기까지의 광경을 젊음 그 자체를 탐닉하는 듯한 이들 청춘의 한 시절을 통해 마주한다.
정점에 다다른 20대 초반의 싱싱하고 건강한 육체,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 서로를 향한 순수한 열망까지가 사회적 변혁을 요구하는 힘과 그를 찍어 누르는 힘이 충돌하는 장 가운데를 거침없이 오간다.
한국엔 몽상가 이상의 청춘들이 있었다
몇 마디 대화와 마지막 시퀀스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며 정치와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던 영화다. 그러나 이들 셋이 그들만의 화원을 기성세대에게 들켜버린 순간 위태로웠던 아름다움은 와장창 깨어져 나간다. 이들이 나누었던 관계의 순수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집 바깥의 세상은 거칠기만 하고, 그 현실 가운데 이들을 서로가 서로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방구석을 벗어나 어른들의 세계를 마주한 이들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인 '몽상가들 The Dreamers'이 표상하는 바를 깨우치게 한다. 현실과 마주해 힘을 발하지 못하는 이상, 그로부터 느껴지는 무력함과 무력감을 말이다.
체제를 변혁하는 데 실패한 혁명일망정 베르톨루치는 그를 더없이 진지한 시선으로 다뤘다. 68혁명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낭만적 태도도, 그를 실패한 무엇으로만 이해하는 가차 없는 태도도 아닌, 실패하고 성장하며 진실한 자기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청춘의 모습을 깊이 있게 응시한다. 몽상가들은 현실과 만나 진짜 제 모습을 찾는다. 그러나 현실 속 강건한 투사에게도, 회의하는 지식인에게도, 심지어 앞선 세대와 꼭 같은 이가 돼 가는 누구에게도 몽상가였던 시절은 필요한 게 아니냐고 관객은 되물을지 모를 일이다.
<몽상가들>로부터 65년 전 의거를 떠올리게 되는 건 한국사회에도 그와 같은 청춘이 없지 않았음을 이해하는 때문이다. '그 촛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된다'는 타고르의 시 구절을 붙들고서 학우들을 독려하던 십대 청춘들이 이 땅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결의문 가운데는 타고르의 문장에 이어 스스로를 정의하는 문장 또한 등장한다.
'우리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해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흘릴 학도'라는 이 문장을 두고서 나는 오랜 몽상을 깨고 마침내 거리로 나아갔을 젊음을 마주한다. 실패한 1968년 서구의 혁명시도에 비한다면, 또 아무리 잘 봐주어도 절반쯤의 타협에 그쳐 군부를 몰아내지 못한 1987년 6월의 결과에 비한다면, 1960년 4월의 혁명은 얼마나 온전한 것이었는가. 그 첫 문을 다름 아닌 십대 학생들이 열어젖혔다는 사실을 우리 영화와 예술, 나아가 문화계는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가. <몽상가들>의 뒤에 씁쓸한 입맛이 남는 것은 그저 이 영화 속 혁명이 실패한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몽상가들스틸컷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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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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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65년 전 한국엔 혁명 꿈꾼 청춘이 있었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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