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스틸컷
메가박스 중앙
자칫 지루하고 지엽적일 수 있는 제약을 영화는 용맹하고 현명하게 돌파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화면분할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그저 하나의 프레임을 여럿으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장 바깥의 기준 프레임은 그대로 둔 채 그 안에 작은 사각형의 프레임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것이다. 작은 프레임은 기준 프레임 가운데 일부를 대체하는데, 대체한 꼭 그 영역의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기준 프레임이 2003년이라면 그곳에 생겨난 작은 프레임은 1800년대 어느 날의 거실 일부를 드러낸다. 작은 프레임 바깥은 2003년, 프레임 안은 1800년대인 기묘한 배치다. 영화는 그렇게 등장한 작은 프레임이 확장되며 기준 프레임의 시대로부터 작은 프레임의 시대로 옮겨간다. 작은 프레임이 기준 프레임이 되고 다시 또 다른 작은 프레임이 생겨나 그를 대체하기까지 기준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꺼졌다 켜졌다, 작은 프레임이었다 기준 프레임이 되고 다시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각각의 프레임은 주된 것만 6개를 넘어선다. 인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중 시대순으로 나누자면 미국이 막 건국될 지음, 상용 비행기가 막 발명된 20세기 초, 리클라이너 소파와 TV가 발명돼 보급되던 1920년대 후반, 2차대전 막판과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발발 전후, 21세기 초,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등이 시간을 건너 자유롭게 오간다.
다양한 시점이 등장하는 만큼 인물들도 다양하다. 개중 주인공격 인물은 리처드(톰 행크스 분)다. 아버지 알(폴 베타니 분)과 로즈(켈리 라일리 분), 자식인 리처드와 아내 마가렛(로빈 라이트 분), 다시 이들이 낳은 딸 바네사(자 자 저메키스 분)에 이르는 3대의 삶이 시간을 오르내리며 펼쳐진다.
이들에 앞서 저택에 살았던 이들로는 이제 막 발명된 비행기를 구입해 비행을 즐기는 비행사 존 하터(귀림 리 분)와 그를 마뜩찮아 하는 아내 폴린(미셸 도커리 분) 부부, 리클라이너 소파를 만드는 발명가 리 비크만(데이비드 핀 분)과 그를 지지하는 아내 스텔라(오필리아 로비본드 분), 성인이 된 아들에게 인종차별에 대비해 경찰검문 시 주의할 점을 알리는 흑인 부부 등이다.
영화는 이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서로 다른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면면을 조명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관계가 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하며 고통을 받는 관계도 있다. 사람 사는 흔한 풍경, 그러나 그 각각이 서로 다른 이유들로 특별하다. 가족과 관계, 그 의미와 가치를 되짚게 하는 일상적 풍경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밖 우리의 것이 근본적으로는 얼마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이란 존재, 그 본연의 삶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듯하다.
흔한 비판에 묻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
영화는 여러 면에서 훌륭하다. 하나는 <히어>가 일찍이 없었던, 부분적으로는 영향을 받았다 해도 전격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공간을 제약하는 대신 프레임 안에 작은 프레임을 활용해 시간을 건너가는 구성을 채택한 건 스스로에게 부여한 족쇄로부터 잠재력을 증폭시킨 인상적 사례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지속되는 영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서사에 쉽게 몰입하도록 한다면, 서로 다른 시간을 보이는 프레임을 수차례 나누는 형식은 감성과 몰입을 제한하는 대신 이성을 깨운다. 어째서 이러한 형식을 채택했고, 그 효과는 무엇인지, 나아가 제한된 공간에서 지엽적으로 드러나는 극중 인물의 행동과 그 이유에 대해 거듭 되짚게 하는 것이다.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는 지극히 용감하고 진보적이다.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가해지는 흔한 비판과 편견, 이를테면 보수적 가치를 강화한다는 류의 비평이 얼마나 쉽고 얄팍한 것인지를 이 영화는 알도록 한다. 결국은 가족이 중요하고, 백인 위주로 구성된 미국 중산층의 삶이 집중적으로 조명된다는 것, 또 발명가며 비행사처럼 진취적인 업은 남성들이 꿈꾸고 여성이란 그를 걱정하고 떼어 말리거나 곁에서 응원만 할 뿐이다. 재능이 있는 여성 캐릭터를 두더라도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인정받는 일을 하는 이로 설정한다는 점 또한 그와 같은 단견에 힘을 실을 수 있겠다.
영화 속 가족을 위해 꿈을 접고 희생한 남성인 알과 리처드가 자신이 포기한 것을 묵묵히 감내하는 데 반해, 여성인 마가렛은 자기가 잃은 것만 생각하고 제 남편의 희생은 돌아보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하필 남성과 여성 캐릭터가 확연히 갈라지는 이 같은 설정을 감안할 때 전작에서도 반복돼온 성별에 대한 고정적 인식, 나아가 보수적 가치의 답습이 아니냔 비판도 나올 수는 있겠다.
비단 성별뿐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백인이고 가장 최근 시점 하나에서만 흑인 가정이 등장한다는 점도 지난 작품들과 경향을 같이한다. 인어공주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 배역까지 흑인 여성이 캐스팅되고, 로마 공화정 최상단의 인물마저 흑인으로 설정하는 근래 미국 문화예술계 흐름을 생각할 때 저메키스의 영화가 보수적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진보적이고 용맹하다
▲히어포스터
메가박스 중앙
그러나 이와 같은 설정을 굳이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을 갈라 특정 성별과 인종을 매도한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고 여긴다. 남성과 여성이 가진 기질적 차이가 존재할 뿐 아니라, 당대의 환경을 고려할 때도 이 같은 캐릭터 설정이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또는 극의 효율을 위해 배치한 설정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감상을 일으킬 수 있겠으나, 의도적으로 그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반대설정을 두는 일은 위에 언급한 PC주의적 캐스팅이 마주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히어>는 진보적이며 용맹한 작품이다. 영화음악은 AI작곡으로 만들었고, 나이든 배우들의 외양을 디에이징 기술로 보정해 청년부터 노년까지 연기하도록 했다. 첨단기술에 적극적인 극중 몇몇 인물들처럼 저메키스는 자신의 영화에서도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심지어는 다수 관객에게 몰입을 저해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약하는 설정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여 사고를 깨우고 의미를 찾도록 이끈다.
신자유주의가 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을 때 도리어 그 가치를 조명하는 작품을 제작했던 그다. 가족공동체, 나아가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가치 있을 수 있음을 기꺼이 확인하는 <히어>의 주제의식 또한 오늘날 영화예술에서 그닥 존중받는 주제가 아닌 것이다. <히어>가 용맹한 영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여기'가 관객의 '여기'와 닿는다
무엇보다 <히어>는 이 시대 최고 수준의 연출자의 작품이다. 적잖은 평자들이 평가절하하는 것과는 달리 저메키스가 살아있음을 이 영화의 엔딩시퀀스가 웅변한다. 영화는 그 마지막에 이르러 시종 고정돼 있던 카메라를 회전시켜 집 안의 다른 공간, 카메라 뒤에 있던 부엌을 내보인다. 그 순간 관객은 우리가 보던 곳이 집 전체도 아닌 그저 거실이란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깊고 조리대와 식탁까지 충분한 공간이 자리한 그곳에서도 얼마든지 거실에서와 같은 길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음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곳의 중심인물은 거실에서 집중 조명을 받은 이들과는 달랐으리란 것도 영화는 단박에 깨닫게 한다.
저메키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메라를 그대로 집 바깥으로 빼어서는 하늘로 날아올라 마을 전체를 조명한다. 그 순간 우리가 본 이들이 산 집은 그저 마을의 많은 집 중 하나일 뿐이고, 수많은 집들이 또한 그와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밖에 없단 걸 이해하게 된다.
통상의 감독이라면 여기서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저메키스는 펼쳤던 시야를 다시 영화가 펼쳐진 좁은 공간으로 집중한다. 마을에서 다시 집으로, 그중에서도 거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이 모든 이야기가 여기(Here) 거실에서 벌어진 작은 것일 뿐이라는 듯. 말하자면 세상엔 수많은 '여기'가 있고, 이 영화가 빚은 아름다움이며 그렇지 못한 것 또한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음을 깨닫게 한다. 관객은 그로부터 저의 삶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다. 저기 <히어>가 진정한 의미에서 '여기'와 닿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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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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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 신작에 쏟아지는 혹평, 그러나 난 그를 옹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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