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원경>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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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인 피부 통증과 더불어 이방원의 의식과 이미지에 영향을 준 또 다른 요인은 답답증이다. 왕이 된 후의 이방원은 온종일 대궐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답답해했다. 위의 태종 2년 실록에 따르면 그는 의원 양홍달의 처방을 근거로 자기 몸의 종기는 구중궁궐에 갇혀 외출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즉위 이전에 비해 바깥 활동이 현저히 축소된 것이 신체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그런 말을 한 것은 임금의 바깥 거둥을 억제하는 신하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임금이 궐 밖을 자주 행차하면 백성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민심에도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관료들은 임금의 외출을 가급적 억제했다. 이것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임금이 유학자들과의 학문 세미나인 경연(經筵)에 집중해야 유교 이념이 더욱 널리 전파될 뿐 아니라 신하들이 임금을 제어하는 데도 유리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신하들이 자신의 외출을 견제하자 이방원이 전문가의 처방을 거론했던 것이다.
이방원은 대궐의 주인이 되고자 두 차례나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것도, 아버지와 형제들을 배반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렇지만 정작 대궐을 다 차지한 뒤에는 답답증을 잘 참지 못했다. 그런 증상을 마음속에 감추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내며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다면, 신하들의 눈에 비친 이방원의 이미지에는 그런 모습도 일부를 이뤘다고 보는 게 이치적이다.
항상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은 어딘가 불안정하게 보이기 쉽다. 오로지 권력에 집착하느라 부모형제도 배신하는 비정한 이방원의 모습뿐 아니라, 피부병과 답답증 등을 참지 못해 일상의 지장을 받는 이방원의 모습도 신하들의 머릿속에 입력돼 있었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궁중 생활을 답답해하는 이방원은 툭하면 밖으로 나가 말을 달렸다. 위의 태종 2년 실록에 따르면, 최측근 조영무는 이방원이 '마음대로 달리는 것'에 대한 신하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그로 인한 사고 위험성 때문에도 신하들은 이방원의 외출을 억제했다. 이방원은 요즘으로 치면 엑셀을 꾹 밟고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을 내는 과속 운전자였다.
이방원은 몸이 야위고 허약했다. <태조실록>에 따르면, 건국 2년 뒤인 1394년 6월 29일(음력 6.1) 이성계는 명나라 사신으로 떠나는 27세의 이방원에게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야위어서 만리 길을 탈 없이 지켜낼 수 있겠느냐?"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방원은 가냘프고 허약해 보이는 체구로 말에 올라타면 속도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바깥 공기를 좋아하던 그는 임금이 된 뒤로는 구중궁궐에 갇혀 피부 종기로 고생하고 답답증에 시달렸다. 이런 증상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재위기간 내내 계속되면서 직무수행과 왕권 유지에도 지장이 생겼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익숙했을 이런 이방원의 모습도 사극 속 이방원의 이미지에 추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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