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스파클. 나이가 들어 방송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자 신비의 약물, '서브스턴스'를 사용한다.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른 채.
영화 <서브스턴스> 배급사
이 지점은 하루이틀이 아닌 고민을 던진다. 대중의 인기를 끌어 사랑받는 스타가 되고자 하는 여자 연예인들의 성공 방식에 어쩔 수 없이 성애화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나날이 어려지는 걸그룹의 지나친 성애화는 이미 문제지만 개선되기 난망하다. 여배우의 경우 젊어서나 할 수 있는 로맨스 배역이 아니고는 캐릭터 발굴이 어렵고, 근래 OTT 드라마가 보여주는 맥락상 꼭 필요하지도 않은 여배우의 과도한 노출은 어떤 관람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도인지 의심하게 한다.
이러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성적 대상화는 그들을 성공으로 견인함과 동시에 시한이 정해져 있는 영광에 집착하게 한다. 언제나 젊음과 마른 몸과 성적 매력을 유지하라는 억압에 시달리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겪는 억압이 이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워너비인 수많은 여성들에게 전이되어 과도한 다이어트나 성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편적 여성의 성적 대상화로 이익을 얻는 것은 엘리자베스를 해고한 연예계 보스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다이어트약 등의 제약 산업 그리고 성형 산업이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낼 당사자는 여성이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단절의 지난함은 엘리자베스와 수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성애화된 여성 이미지로 막대한 돈을 버는 산업 구조에 기꺼이 이용되도록 적극적으로 부역한 당사자가 성애화된 여성을 욕망하는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 여성 자신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마침내 괴물로 변한 엘리자베스이자 수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관객(사회)을 향해 피의 향연을 벌이는 폭력적 피날레가 극적으로 해방감을 주기엔 어딘지 찜찜하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너희들이니 흉한 괴물이 된 나도 당연히 사랑해 줘야지 하는 복수심의 이면에는 몬스터가 되어서라도 주목받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다고 내면화한 욕망이 이색 버전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SNS에, 콘텐츠에, 이제는 AI의 가공할 조작까지 가세해 폭포처럼 쏟아지는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들. 태초에 누가 만들었고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를 묻고 따지는 게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를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재생산하며 끝도 없는 이미지들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어서일까, 영화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해석하기 난해해진다. '너다워지라', '너(못생기고 뚱뚱한)를 너대로 사랑하라'는 등의 긍정 컨설팅이 기만임을 눈치챘고, '탈코'를 한물간 유행쯤으로 여기는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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