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멜랑콜리아>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저스틴과 마이클은 리무진을 타고 결혼식장으로 가는 중이다. 그런데 좁은 길, 실력 없는 기사로 애를 먹는다. 우여곡절 끝에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 부부의 대저택에 차린 결혼식장에 도착하지만 매우 늦었다. 클레어의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시작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저스틴의 이혼한 두 부모, 그리고 저스틴의 회사 상사가 초를 친다. 아빠는 두 젊은 여자를 데려와 애정행각을 벌이지 않나, 엄마는 결혼따위 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회사 상사 잭은 저스틴에게 광고 문구를 생각해 내놓으라고 괴롭힌다. 저스틴의 우울증이 돋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한편 '멜랑콜리아'라고 이름 붙인 행성이 지구를 향하고 있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예측하길 지구를 비껴갈 게 99% 확실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행성의 모습을 즐기면 된다고 하지만, 클레어는 불안감에 치를 떤다. 반면 우울증이 한계를 넘어선 듯했던 저스틴은 평온해 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의 명작
영화 <멜랑콜리아>가 근래 보기 드문 영화계의 대위기 속에서 13년 만에 재개봉했다. 예전 작품이기에 OTT로 볼 수 있지만 명작을 극장에서 다시 보는 또는 처음 보는 경험은 색다를 것이다. 감독은 현대 덴마크 영화계가 낳은 유일한 거장 라스 폰 트리에로,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로트 갱스부르 등이 함께했다.
제목은 우울증을 의미하는 'Melancholia'를 그대로 음역한 <멜랑콜리아>로 대략의 내용과 메시지 등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암울하고 어둡고 염세적인 색채가 강한 감독의 영향까지 생각한다면 더 깊이 있게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거대한 은유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을 때 어떤 생각까지 가닿는지, 무엇을 원하게 되는지 등. 단순한 우울감이라면 자가 치료가 가능할 테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고 치료를 해야 하니 말이다.
영화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갖춰놓은 게 아니라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아름답게 들여다본다. 넓고 고즈넉한 클레어 부부 내외의 대저택이 주요 배경으로 많은 걸 담고 있는 이름의 '멜랑콜리아' 행성조차 너무나도 아름다운 푸른빛을 발한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저스틴과 클레어의 입장과 정반대인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이토록 힘드니 말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우울증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멜랑콜리아' 행성은 그 바람의 결정체다.
지구가 사악하다고 말하는 저스틴인 만큼, 그러니 (설사 멸망한다고 해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인 만큼 이 영화가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체적이다. 외부에서 우울증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울증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다. 하여 사람마다 극과 극의 감상평을 남기지 않을까 싶다.
'지구가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저스틴이 원래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지만, 그래서 남편이 될 마이클과 언니 클레어 등이 보살펴 이겨내진 못할망정 버텨낼 수 있었지만, 결혼식에서 외부 요인으로 사달이 나고 만다. 이혼한 아빠와 엄마, 회사의 상사와 팀원이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저스틴으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들의 그녀를 향한 행동이, 때와 장소와 상대가 맞지 않는 행동이,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그녀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들고 급기야 '지구는 사악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다분히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회사에서 종종 듣는 말이 있는다. '지구가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그러면 회사일이고 다 멈춰 버리니까. 그도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에 외부 요인이 바뀌길 바라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영화에서 '멜랑콜리아' 행성의 출몰이 판타지로 작용할 때 저스틴의 머릿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최초로 소개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이 마스터피스에 대해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한마디는 하고 싶다. '참으로 특별한 영화다'라고 말이다.
▲영화 <멜랑콜리아> 포스터.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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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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