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은 전통적인 여성다움을 따르지 않는다.
SBS
이처럼 이들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거스르며 연애를 시작한다. 사회적 통념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았기에 연애에서도 주변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지윤의 고백 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은호는 선배 강석(이재우)로부터 "상대방이 원하는 건 배려가 아니라 솔직한 네 마음"이라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낸다(7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둘은 이렇게 다짐한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 봐요." (8회, 지윤)
그 후 이들은 '비밀연애'를 하지만, 눈치채고 물어오는 미애(이상희)와 정훈(김도훈)에게는 솔직하게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말한다. "은호가 애 딸린 남자여서 좀 그렇다"는 미애에게는 "그게 왜 흠이야?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인데. 난 지금의 은호씨가 좋아"라고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8회).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이들이 무척 용기 있어 보였다. 사실 연애는 관계의 '취약성'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취약성에 대해 연구한 학자 브레네 브라운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장 취약해지는 지점이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음'을 인식할 때라 했다. 사람들은 이를 피하고자 감정을 회피하거나, 완벽주의의 늪에 빠지거나, 사회적 통념에 자신을 끼워맞춰 '척' 하는 '갑옷'을 두르고 산다.
그러나 이런 갑옷들을 벗어 던지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더 잘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연애 관계는 진심을 보이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끊어지거나 어색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윤과 은호는 전통적인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갑옷'을 이미 벗은 상태였다. 이미 사회에서 규정한 갑옷 하나를 벗어둔 이들은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관계의 취약성을 보다 잘 수용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함께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써 왔던 다른 갑옷들도 하나둘 벗어 던지고 자신의 다른 모습들을 찾아간다.
지윤은 은호와 연애하면서 회사 직원들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기 시작한다(9회). '일'이라는 갑옷을 입고 주변을 차단했던 지윤이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던 남성들이 남성다움의 갑옷을 벗고 서서히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모습과 유사했다.
은호는 오직 딸만 바라보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와 즐거움도 돌아보기 시작한다. 은호의 모습은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돌보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욕구를 돌보면서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이들은 이렇게 연애를 통해 확장돼 가는 모습마저 전통적인 성별 관념을 전복시킨다.
드라마가 중반을 지나면서 그간 평탄했던 둘의 관계에 조금의 변화가 예상되기도 한다. 어릴 적 겪었던 화재 사고의 상처를 전면으로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 사회와 정신을 관통하는 가장 오래되고 두꺼운 갑옷 중 하나인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갇히지 않은 이들이기에, 이런 상처 역시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임을 말이다.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개방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갈 수 있을 것이다.
돌보고 감응하는 남자와 목표 지향적인 여자.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과 반대로 연애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 신선함에 마음이 설렌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의 연애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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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