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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자동차의 보급'은 미식 문화의 혁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를 통하여 사람들이 먼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여행과 미식을 함께 즐기는 것이 수월해졌다.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는 자동차 문화의 발전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딴 타이어 회사를 창업하여 크게 번창했다. 미슐랭 형제는 타이어를 많이 팔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소비자들에게 운전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에서 자동차 여행안내 책자를 고안해낸 것이,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미슐랭 가이드'의 역사적인 시작이다.
초기의 미슐랭 가이드에는 맛집 소개는 없었고 각지의 명소와 함께 여행중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호텔을 소개했다. 가이드에는 호텔 음식의 가격에 따라 비쌀수록 별로 등급을 매겼다. 초기 미슐랭 가이드는 모두 무료로 배포되었음에도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슐랭 형제는 한 타이어 가게를 방문했다가 공들여 만든 미슐랭 가이드를 작업용 받침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공짜로 얻은건 소중하게 여기지않는다는 결론을 깨달은 형제는 이후 미슐랭 가이드를 유료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또한 더욱 유용한 정보를 담기 위하여 트렌드를 면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음식'에 큰 흥미를 가진다는 것을 파악해냈다.
1923년부터 미슐랭 가이드는 호텔과 레스토랑 섹션을 분리해서 제작되기 시작했다. 1926년부터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자체 평가단을 구성하여 레스토랑을 분석하고 추천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비밀 평가단의 자격은 경력 10년 이상의 예리한 미각을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일반인과 같은 값을 지불한 이후 음식의 맛을 평가했다.
1933년에 이르러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별을 3개로 나누어 평가하기 시작했다.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 두 개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만한 레스토랑', 최고 등급인 세 개는' 요리의 맛을 보기 위하여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곳'으로 구분했다. 여기서 미슐랭은 별점만 부여할뿐 공정성과 익명성을 위하여 세부적인 리뷰는 미공개로 처리했다. 다만 미슐랭 평가의 변하지 않는 5가지 원칙은, 재료, 요리의 완벽성, 조화로운 풍미, 창의성, 맛의 일관성 등으로 알려져 있다.
미슐랭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접어들며 미슐랭 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연합군이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던 프랑스 수복작전에 나서면서 프랑스 전역의 도로망과 상세지도가 포함된 미슐랭 가이드북이 전시 군사용 작전지도로 중요하게 활용된 것이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도 미슐랭 가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슐랭 가이드의 명성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는 2차대전 종전 이후 사회 복구에 나서면서 전쟁으로 파괴된 미식 문화를 복원하는데도 총력을 기울였다. 프랑스인들에게 요리는 단순한 음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문화 자부심을 이루는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1945년부터 정식으로 재발간되기 시작한 미슐랭 가이드는 이러한 프랑스 미식의 명성을 알리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미슐랭은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세계로 진출하기에 이른다. 2006년에는 뉴욕판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되었고, 2008년에는 출간 100여년만에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아시아에도 진출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해당 가게의 매출 상승은 물론이고 지역의 관광업 활성화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미슐랭 가이드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여러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는 미슐랭에서 3스타까지 받은 스타 셰프였지만, 미슐랭 평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언론의 추측성 오보에 상처를 받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또한 영국의 유명셰프 고든 램지의 스승이자 최연소 미슐랭 3스타로 유명한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는 "3스타를 얻었을때는 잠시 승리감에 도취되었지만 더 이상 올라갈 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지옥이다. 어떻게 나보다 요리를 모르는 이들이 내가 만든 음식의 점수를 매길 수 있는가. 요리사와 미슐랭 중 어느 쪽이 옳은가"라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미슐랭이 언제든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다.
구체적인 평가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전통 때문에 미슐랭 가이드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미각을 획일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미슐랭가이드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로서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한편으로 이처럼 다양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가이드가 프랑스 미식 문화의 예술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공로만큼은 부정할수 없다. 2010년 프랑스 미식은 '가스트로노미(Gastronomy, 미식학 혹은 미식문화를 총칭하는 말)'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른다.
'음식에 대한 사랑만큼 진실된 사랑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의 격언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흑백요리사> 등 인기 요리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미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아마도 맛있는 음식만큼 인간의 역사와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전해주는 친구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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