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동화 작가가 꿈인 단비(박지현 분)는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청소년 보호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동화를 집필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포부와 함께다. 동화와 청소년 보호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으로는 서로 비슷한 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출근 첫날 그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살색의 향연이다. 주된 업무가 유해 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마주해야 하는 야한 동영상의 수는 40-50편. 동화를 쓰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음란물을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방심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황 대표(성동일 분)와의 악연은 단비를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의 소중한 자동차를 망가뜨리게 되면서 엮이게 된 단비는 1억 원이라는 수리비를 대신하는 조건으로 20편의 성인 소설을 집필하는 노예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회사 선배 정석(시원 분)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동화와 성인 로맨스 장르의 글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 단비는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전업 동화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야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미와 뜻밖의 재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현빈, 손예진 주연의 영화 <협상>(2018)을 연출했던 이종석 감독의 신작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는 코미디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타이틀이나 시놉시스와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으로도 이 작품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달리 의외로 영화는 메시지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노출보다 소재나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한 코드로서 성적 코드를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려는 모습이 느껴진다.
02.
"솔직히 야설이 다 거기서 거기지 표절은 무슨 표절."
이 작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의역해 보자면 문화와 장르에 수직적인 의미의 수준과 등급의 차이가 주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처음 단비의 꿈으로 설정되어 있는 동화, 동화 작가는 순수하고 가치가 있는 문학 장르로, 황 대표가 몸 담고 있는 성인 로맨스, 야설 작가는 저급하고 가치 없는 장르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장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야설의 장르에 진입하기 전에도, 처음 방심위의 청소년 보호팀에 입사한 단비는 앞으로 자신이 맡게 될 업무에 난색을 보이며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직업에도 귀천이 따로 있다는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황 대표와 맺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처음 야설을 쓰는 단비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성인 로맨스라는 것이 그저 야한 장면만 가져와 짜깁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다른 작품을 표절하는 일 또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 바탕은 앞서 이야기한 해당 장르의 저급함에 대한 인식에 있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공모전 담당자의 태도나 동화책 출판사 선배의 인식에도 유사한 결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지점의 문제는 영화 상에서의 설정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지점의 주제 의식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풍자로도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