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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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주택가, 정원도 제법 잘 꾸며진 단독주택에서 '요리코'는 남편 '오사무', 아들 '타쿠야'와 살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스도' 가족은 무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듯 보인다. 병상에 누워 수발해야 하는 시아버지 돌봄이 만만할 리 없지만, 요리코의 일상은 크게 모자랄 것도, 딱히 아쉬울 점도 없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표본처럼 그려진다.
요리코는 동네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할인 행사라도 잡혀 있는지 마트 앞에는 줄이 잔뜩 서 있다. 가게가 개점하자 주민들은 앞을 다퉈 매장으로 달려간다. 대체 무슨 이벤트이길래 궁금해하던 관객은, 그들이 모두 생수 매대에 몰리는 걸 보고 의아한 감정에 휩싸일 테다. 직원은 1인당 2병만 구매 가능하다며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할당량을 챙긴 요리코는 귀가해 저녁상을 준비한다. 아들은 거실 소파에서 빈둥거리고, 남편은 정원 화분에 물을 주던 참이다. 식사 준비를 마친 요리코는 아들에게 아빠를 불러오라 하지만, 부스스 일어나 정원으로 나갔던 타쿠야는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남편은 그날 이후 소식이 끊겼다. 말 그대로 '실종' 상태인 것이다. 주변에는 갑자기 직장에서 단신 부임 파견을 나갔다고 둘러대지만, 남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요리코가 수발하던 시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대학을 마친 아들은 먼 큐슈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네 식구가 살던 집은 이제 요리코 홀로 지키는 중이다. 남편이 있던 시절 꽃과 나무가 무성하던 정원은 몰라보게 변했다. 공들여 그가 관리하는 정원은 일본 전통건축 양식처럼 정원석과 모래로 꾸며져 있다. 요리코는 자신이 쇼핑하던 동네 마트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생활한다.
그의 집 실내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개 세상을 떠난 가족의 위패가 모셔질 자리에 생수가 든 물병과 유리구가 차지하고 있다. '녹명수'라는 신비한 효능을 지닌 생명수라 한다. 요리코는 물의 영험한 에너지를 숭배하는 신흥종교에 시간과 돈을 바치며 외로움을 달래듯 보인다. 매일 제단에 모신 생명수에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모래 정원의 물결 파문을 정리하는 건 물론, 주기적인 신자 모임에 열성으로 참여한다. 잡념을 없애고 부정적 마음을 치유하는 의식을 마치면 요리코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다. 어쨌건 겉으로 봐선 상처를 이겨내고 나름대로 잘 사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던 어느 날, 요리코는 맞은편에 숨어 집을 바라보는 수상쩍은 중년 남자를 발견한다. 질겁하고 문단속을 하려던 그는 사라진 남편이 남루한 행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포착한다. 하지만 요리코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남편의 실종 이후 풍파를 어지간히 겪은 듯하다. 배신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차마 내쫓지는 못하고 집안에 일단 들이긴 했지만, 대화 없이 냉랭할 따름이다. 염치없이 눈치만 보던 남편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밝힌다. 요리코의 마음은 '파문'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일본 힐링 영화 명감독이 과감히 선보이는 사회적 재난과 가족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