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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이 자랐는데... 왜 이토록 엄마가 되고 싶은 걸까

[리뷰] 쿠팡플레이 드라마 <가족계획>

25.01.10 13:31최종업데이트25.01.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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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손을 벌리는데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는 한 여성 청년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새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연인이 사줬다고 어색한 자랑을 했다. 운동화 값의 몇십 배를 뜯어가기 위한 교활한 뇌물임이 분명했는데도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버지가 딸한테 손을 벌리냐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식, 특히 딸을 착취하는 아버지는 많다.

나와 언니도 가족에게 착취당했다. 돌아가신 가족이 듣는다면 기함하겠지만 사실이다.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는 어떤 관계든 나쁘다. 가장 많은 착취가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관계는 단연 가족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드라마 등의 콘텐츠에는 왜 이다지 가족애를 많이 그리고 아름답게 그릴까. 그것은 어쩌면 '가족다운(?) 가족'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현실에서의 연애나 결혼이 힘드니 이를 다루는 예능 콘텐츠가 범람하듯, 가족이란 시스템도 이미 붕괴된 폐허 위에 구축되고 있는 판타지는 아닐지...

이들은 왜 이토록 가족이 되고 싶어 하는가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스틸컷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스틸컷쿠팡플레이

이런 맥락에서 나는 쿠팡플레이 드라마 <가족계획>의 가족애가 애틋하면서도 당황스럽다. 게다 알고 보면 영수네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된 구성원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가족이지만 가족 같지 않고 가족 같지 않으면서 가족이다. 어쨌거나 이들은 공식적으로 가족이고 보다 가족다워지기 위해 애쓴다.

동고동락이 슬로건인 이들은 가족다움을 획득하고 보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격투로 피 칠갑을 하고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먹자고 하는 장면은 이것이 이들에게 가족의 의미임을 환기시킨다. 가족이 뭐 별거겠느냐,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이지 하는...

'가족계획'은 1960-1970년대 정부가 산아제한을 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이상한 표어를 보고 자랐다. 이때 자녀가 둘인 집이 드물었다는 것이 바로 '가족계획'이 등장한 역설을 설명한다.

드라마 <가족계획>은 인구가 많을 때는 적게 낳으라 하고, 이제 너무 적으니 많이 나으라고 재우치는 정부의 내키는 대로 식 출산 관리 정책을 유쾌하게 비튼 제목이다. 또한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영수네는 4인 가족인데, 이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구성한 바람직한 가족 모델이라는 점에서 신랄한 익살이기도 하다.

이들 영수네 가족에겐 계획이 있다. 궁극적 목표일 수도 있는데 살아남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말만 들어도 무서운 특교대 출신으로 각자 비장의 개인기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엄마 영수(배두나)는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고, 아버지 철희(류승범)는 출중한 일당백의 무력이, 할아버지 강성(백윤식)은 격투 무기 제작에 깊은 조예가, 그리고 딸인 지우(이수현)는 존재 자체가 살상 무기일 정도의 폭발적 격투 능력이 있다. 아들 지훈(로몬)은 IT 천재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부상으로부터 빠른 회복력을 보이는 어설픈 초능력자라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보면 초능력 가족인 셈이다.

초능력 가족이라는 설정은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도 등장했는데, 이들이 혈연 가족인 반면 <가족계획>의 영수네 가족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이질적이다. 그리고 이런 이질성을 바탕으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영수네는 왜 이토록 가족이고자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은 왜 그토록 가족다움을 소구하는가다.

특히 영수는 지우에게서 "친엄마도 아니면서 엄마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번번이 지우의 위악을 용서하고 오히려 미안해한다. 영수의 자애로움은 굉장한 미스터리다. 그는 엄마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도 전부터,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어떤 관계인지 터득하기 전부터, 특교대에서 길러지고 정예로 훈련됐다. 그런 영수가 아이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특교대를 탈출해 아이들에게 줄곧 "엄마가 지켜줄게"라면서 지극한 모성애로 보호·양육하는 엄마가 된다는 설정이 가능한가.

시즌2에 바라는 점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스틸컷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스틸컷쿠팡플레이

극단적 아이러니는 영수의 특교대 교관이 스스로를 '엄마'라 칭하고 영수를 '딸'이라 부르며 훈련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수의 엄마 되기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교관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모성이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무엇이라는 것인가.

전자라면 위험천만한 기만이고, 후자라면 살인 병기로 키워진 한 아이가 어른이 돼 누군가를 살리는 존재로 거듭났다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한 영수의 엄마 되기는 '여성은 누구나 타고난 모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존재'라고 우기는 유구한 모성 신화의 거짓말을 재탕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수의 가족애가 기획일지도 모른다는 꺼림직함은 철희의 일편단심에서도 드러난다. 영수를 지키는 게 일생일대의 유일한 삶의 이유인 철희의 순애보는 바로 영수가 어릴 때 심어 놓은 기억 조작이기 때문이다. 이를 노출시키며 드라마는 '가족계획'이 영수의 큰 집단 기억 조작이라는 의심을 낳게 한다. 그리고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가족을 가공하고 사수하고자 하는가까지 말이다.

가족은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거대한 기획이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대기업의 모토가 얼마나 기만적 허구였는지는 그 기업이 위험한 환경에서 죽도록 일한 산업재해 노동자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기업은 가족으로 대할 마음도 없으면서 가족을 내세웠다. 혹은 착취의 최선봉에 선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이를 최선을 다해 이용했다.

모성과 가족은 모두 기획된 시스템이다. 많은 드라마가 전시하듯 가족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1인가구가 가구 구성의 30%를 육박하고 있다는 현실은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온전히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가족계획>의 가족이고자 하는 노력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은폐 혹은 지키기 위해 기획된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시즌2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덧붙여, 드라마 폭력 재현의 수위가 높아도 너무 높아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렇게 피바다가 되는 참혹한 폭력의 재현이 아니어도 시청자는 폭력의 폭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시청자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신뢰하고 시즌2에서는 과도한 폭력의 재현이 지양됐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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