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묘지뷰 싫다는 아파트, 이 남자가 생각해낸 기막힌 대안

[인터뷰]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 윤성민 작가

25.01.10 13:49최종업데이트25.01.11 11:16
원고료로 응원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의 낭독공연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의 낭독공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1월 10일~12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진행하는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윤성민 작, 유영봉 연출 / 극단 서울괴담)는 다소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연극은 '의심'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가지고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자행된 '순장(殉葬, 죽은 지도자가 사후에도 그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원하며 다른 존재를 같이 묻는 장례를)'과 요즘 시대에 아파트 '분양'을 연결 짓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전형성에서 탈피해 발상의 전환을 이끈 작품"이라며 본격적인 막이 오르기 전부터 많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에서 아이러니한 점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욕망이 펼쳐지는 장소가 '무덤'이라는 것이다. 200년도 훌쩍 지난 에피소드를 소환했는데, 과거에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이 작동되었음을 동시대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내 무덤에 너를 묻고'라는 타이틀에서 엿보듯 연극을 관람한 이들은 "눈앞에 놓여있는 무덤 안에 묻힌 것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을 것이라며 윤성민 작가는 지난해 8월 무대공연 제작에 앞서 펼쳐진 낭독공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제목에서 '내'는 일반 사람일 수도, '너'는 부정적인 대상을 포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무덤 속에 넣어버렸는데, 저는 무덤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마침표'라고 생각했어요. 한 문장을 끝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하면 안 될까요?"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를 쓴 윤성민 작가는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최근에는 202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서 '위대한 무사고'로 당선됐다. 이번 공연은 윤성민 작가의 첫 장막 희곡 작품이다. 본격적인 공연의 개막에 앞서 지난 6일 윤성민 작가로부터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첫 창작 희곡으로 무대공연 완성하다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의 낭독공연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의 낭독공연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덤이 보이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가 보이는 무덤이 있습니다. 죽은 무덤은 살아있는 아파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살 수 없게 아파트의 철근을 빼돌리는 사람과 철근 있어도 살 수 없는 아파트를 봤습니다.

조선 왕조의 대가 바꿔치기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백성에게 왕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소문을 낸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 죽었을 겁니다.

무덤에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래서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인 만큼 무덤 속에 집을 지어봤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말이 생각나서 무덤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을 생각하다가 묻어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적었습니다."

낭독공연에서 유영봉 연출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바로 (작품의 소재가 된) 경종의 무덤이 있다며 이렇게 제작 소회를 들려주기도 했다.

왕의 이복동생인 왕세제를 왕으로 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던 김춘택은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지방에 숨어 지내며 때를 살피던 중 사촌이 역모로 체포되면서 생존이 발각된다. 왕은 김춘택에게 능지(陵地)를 알려주며 자신의 묘를 만들기를 명하고 혼자 묻히진 않을 테니 그 묘에 순장을 하겠다고 말한다.

김춘택과 그의 가족들은 누가 묻힐지 모를, 여차하면 역모로 몰린 자신들이 묻힐지 모를 무덤을 공사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한편 왕은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왕세제가 진짜 역모의 배후에 있는지 아닌지 의심하며 그를 죽여야 할지 고민한다.

경종과 김춘택의 대립이 볼거리인 연극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은 경종이 "자신의 능지공사 후에 순장하겠다"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리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동생인 세제가 김춘택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경종은 동생을 죽여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연극은 특정 인물이 죽었을 때 살아있는 자는 죽여서 함께 묻는 장례법인 '순장'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다. 사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거의 사라진 풍습인데, 윤 작가가 이런 소재를 희곡에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생각들이 융합된 것 같아요. 무덤 뷰 아파트 논란을 보면서, 결국 무덤이 밀려나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현실에 부동산이 인간성을 앞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또한 많은 사람이 주거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현실을 보면서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무덤을 떠올리게 됐는데, 진시황릉처럼 거대한 무덤은 공간 활용이 비효율적이잖아요?

현대인이 아파트 계단이나 화장실에서도 살려고 하는데 "왜 무덤 속은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거주 공간이 점점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요람과 무덤'을 합쳐보자는 시도를 하게 됐습니다."

다시 <내 무덤에 너를 묻고>의 내용 안으로 들어가 보자. 경종과 영조 이야기를 통해서 다루고 싶었던 구체적 이슈와 정치·사회적 토픽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윤성민 작가가 같이 고민하고 싶은 주제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동산 문제인 것인지 궁금한데, 작가는 이렇게 소개했다.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보시는 분들이 무언가 더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어요. 최근 뉴스들에서 접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지점들이 있었을 거예요. 아파트 관련 얘기도 있고, 최근의 사기 사건들과도 연관 지어 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한 가지를 완전히 매칭시키기보다는 보시는 분들이 '이건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자유롭게 생각하시는 게 더 좋아요. 작가가 딱 고정시켜 놓으면 작품이 야윈다고 생각하거든요."

희곡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연출

 윤성민 작가
윤성민 작가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윤성민 작가는 이번 작품의 구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친구가 말해준 '왕조가 다를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때는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연극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쓰기 전에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면서 조금씩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더 깊이 공부하면서 이런 신념이 커져갔다.

"저는 역사 기록에는 항상 기록자의 견해가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영조가 경종의 무덤을 자주 찾아가고 '황형'이라고 부르는 기록이 좀 의문스러웠어요. TV 프로그램에서 배우들이 혼잣말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거든요. 누군가를 의식하고 하는 말처럼요.

영조라는 인물은 능청스러운 면도 있고 의문스러운 면도 있어서 좀 복잡해요. 형에 대한 그리움을 계속 표현하는 게 좀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리워했을 수도 있고,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결국 역사 기록을 보면서 상상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공부하면서 작품을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이 공연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극장장 강량원, 이하 예술극장)이 매년 신춘문예 희곡부문을 통해 등단한 작가를 지원하는 '봄 작가, 겨울 무대'를 통해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극장이 역량을 인정받은 신진작가가 지속해서 희곡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집필과 무대화 과정에 동행하는 예술극장의 작가지원 프로젝트이다.

예술극장은 봄의 문턱인 2024년 2월, 작가에게 신작 장막 희곡을 의뢰했다. 이후 드라마투르그와 연출가 매칭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같은 해 8월 7편의 낭독 공연을 무대에 올린 바 있으며, 11월 22일에는 7편의 신장 장막 희곡이 수록된 < 2024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지만지드라마 펴냄)을 출간하기도 했다.

[공연정보]

<내 무덤에 너를 묻고> 윤성민 작, 유영봉 연출 극단 서울괴담
2025년 1월 10일(금) 19:30 1월 11일(토) 15:00, 19:30 1월 12일(일) 15:00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전중용, 권택기, 공하성, 김성환, 길덕호, 박지영, 김민지

 <내 무덤에 너를 묻고> 포스터
<내 무덤에 너를 묻고> 포스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대학로 아르코 내무덤에너를묻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 넘게 문화예술에 몸담고 있다.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매거진)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과 한겨레신문(2016~2023)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썼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