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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가족 영화인줄 알았는데... 517번 정자 기증한 스님 사연

[리뷰] 영화 <대가족>

24.12.22 14:38최종업데이트24.12.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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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있다. 하나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정자'다. 성교육 영상에 나오는 미지의 '그것', 올챙이처럼 꿈틀거리고 염색체 XY에게 나오는 '그것'을 말하는 게 맞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우주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하나의 정자에는 하나의 우주가 깃든 것이고, 그렇기에 NASA 로켓처럼 신중을 기하며 쏘아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남자가 영겁의 우주에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다. 평범한 스님인 줄 알았던 내가 알고 보니 420명의 아버지라고? 대학생 시절, 무심결에 했던 정자 기증이 새하얀 생명으로 피어났다. 세상 사정 다 아는 스님이 책임감 없는 사정(射精) 때문에 꼼짝없이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역시 사정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죠, 스님.

517번의 정자 기증? 스님 왜 그러셨어요

 영화 <대가족> 스틸컷
영화 <대가족>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승려가 된 '문석(이승기 분)'에게도 일반인 시절이 있다. 의대를 다니며 마음껏 연애했다. "집이 비었다"는 여자 친구의 말에 달려갔지만, 정작 기다리는 건 연인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대학교수였다. 그는 벌벌 떠는 문석을 병원으로 잡아가더니 호구조사를 벌였다. 몸은 건강한지, 아픈 데 없는지. 착실하게 대답한 문석은 알 수 없는 방으로 끌려간다.

그 방의 정체는 '정자 기증실'이었다. 난임 부부의 고통을 늘어놓던 간호사는 플라스틱 통을 건넸고, 문석은 마지못해 정자를 배출했다. 그런 순간이 무려 517번이나 이어졌고, 결국 무거운 업보가 되어 찾아왔다. 여러 방송을 오가며 인생 멘토로 자리 잡던 스님 문석은 "네 자식이 찾아왔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인생이 뒤집힌다.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민국(김시우 분)', '민선(윤채나 분)' 남매가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문석이라며 찾아온 것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들을 외면하는 문석과 달리, 항상 대손 걱정을 하던 아버지 '무옥(김윤식 분)'은 기쁘기만 하다. 함께 남매와 일상을 보내던 문석은 문득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더 있을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두 남매의 친자 검사를 진행할 겸, 문석은 숨은 자식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막막한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 친구 부부가 낳은 딸이 자신의 정자 기증으로 탄생했다는 소식, 근데 그 정자가 하필 자신의 것이 아닌 몰래 배달원을 꾀어서 배출시킨 '그' 정자라는 소식까지 알게 된다.

그제야 문석은 가볍게 사정한 죄를 깨닫게 된다. 교수의 등쌀에 밀려 기증한 정자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420명의 생명이자, 하나의 우주가 되다니. 자기 어깨에 쌓인 것이 그냥 업보가 아니라 사람 목숨이라고 생각하니 문석은 점점 현실에서 밀려나 깊은 질문에 빠진다. 이 아이들이 나의 정자에서 온 거라면, 대체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가.

문석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리고 매사 어긋났던 아버지와의 기억을 돌고 돌아 태초로 돌아간다. 그러다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빠졌던 자신에게 "세상 만물이 너의 어머니이자 가족"이라 말한 큰 스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았다. 나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사랑에서 왔고 사랑으로 향하고 있다고. 친자식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를 받고도 문석과 무옥은 남매에게 향했고, 가족이 되었다.

'대'안 가족에 '대'하여

 영화 <대가족> 스틸컷
영화 <대가족>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결과적으로 주인공의 가족이 커진 건 맞는데, 가족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제목 속 <대가족>의 '대'가 큰 대(大)가 아닌 '대하여'의 대(對)를 뜻하는 것처럼 가족이란 무엇인지 논한다. 꿈틀대는 정자로 엮어가는 금줄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빚어가는 가족은 불어 터졌지만, 맛있는 만두처럼 얼마나 따뜻한지 말한다.

제작자의 의도를 넘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이자면, 제목 속 '대'는 '대안 가족'의 대(代)일지 모른다. 사실 영화 예고편부터 제사 지내기에 바쁘고, 대를 이을 자식 찾기 바빠서 고리타분한 전통적 가족, 내지 '정상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겁먹었는데, 정확히는 정상 가족을 박살내고 그럼에도 끈끈한 '대안 가족'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부부처럼 서로를 살뜰하게 돌보는 무옥과 '정화(김성령 분)'의 관계나 생판 모르는 남자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엄마로서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연(강한나 분)', 가족이 없는 아이들을 돌보며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보육원 수녀님들까지.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도, 공문서에 '가족'이라 이름 박히지 않아도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대안 가족의 얼굴을 띠고 있다.

영화가 정상 가족을 뭉개고, 대안 가족을 새로 쓰는 과정에서 가장 처참히 부서지는 건 가부장제다. 시종일관 무게 잡던 무옥이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해맑게 놀이기구를 타고, 또 전법을 설파하던 스님 문석이 스스로 무책임한 아버지임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며 남성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족과 아버지상의 유약함을 고민하게 한다.

 영화 <대가족> 포스터
영화 <대가족>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연말만큼 극장가에 불붙는 시기가 또 없는데, 이 영화는 가진 것에 비해 포스터나 홍보 방식에서 영 속내가 드러나지 않았다.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많은데, 나로서는 '관객 글썽임' 수치를 신뢰하는 편이다. 옆에 앉은 관객이 머금은 눈물양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영화는 끝나고 계속 우느라 일어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대가족>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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