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팝업스토어
최혜선
그런 의미에서 눈을 감고 기억에 남는 덕질을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지난 4월 BTS 팝업스토어에 방문했던 날이다. 하루에 1000명으로 입장 인원이 제한돼 있는데, 직장인인 내 형편 상 주말에만 가야 했다. 게다가 팝업스토어 방문 외에도 휴일에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보름 정도의 행사 기간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어떻게 이 복잡다단한 일정을 조정할 것인지 맹렬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팝업스토어에 가기로 한 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10분 만에 집에서 튀어나갔다. 행사장 앞에 도착하니 오전 6시 43분. 오전 11시부터 운영이 시작되지만 새벽부터 현장에서 대기등록을 할 수 있었다. 내 웨이팅 번호는 251번.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내 앞에 250명이 등록을 한 것이다.
대기등록을 마친 후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됐다. 일단 이른 아침에도 영업을 하는 감자탕집에서 속을 든든히 채웠다. 연고도 없는 동네에서 아침부터 거하게 감자탕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어차피 덕후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일까지 해봤다'를 모토로 삼겠다고 결심했던 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배를 채운 후에는 근처 서울숲으로 이동했다. 서울숲에는 BTS 팬들이 조성한 벤치가든이 여러 곳 있다. 쾌적한 봄 날씨 속에서 잘 관리된 숲과 연못을 보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던 시간의 공기와 햇살, 바람은 지금 생각해도 행복감을 준다.
다시 팝업스토어가 있는 성수동으로 돌아왔다. 평소 사진이나 굿즈에는 그닥 구매욕이 생기지 않는 편이었는데, 단체활동을 멈추고 있는 이 시기에 열린 완전체 방탄의 팝업스토어는 어떤 그리움과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었다. 7명이 함께 있는, 커다랗게 인쇄된, 거대한 물성을 가진 콘셉트 포토를 보는 것만으로 그저 좋았다. 4월 말의 나는 여러 흉흉한 상황들 속에서 그렇게도 BTS 완전체의 행보가 그리웠던가 보다.
집에서 중계 봐도 되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2024 FESTA가 열린 잠실 종합운동장
최혜선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날은 지난 6월 멤버 진이 제대 다음 날 팬들을 위해 허그회를 하고 방탄의 데뷔일을 기념하는 FESTA의 오프라인 행사가 열린 , 잠실 종합운동장 겉돌을 하러 갔던 날이다. 추첨에 떨어져서 행사장 안에 들어가 직관할 수는 없었지만 괜찮다. 온라인으로 중계해준다고 하니까.
집에서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는 공연을, 공연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초여름 뙤약볕 아래 왜 굳이 사서 고생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잠실 종합운동장은 BTS 공연이 열리던 곳이어서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2022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2030 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 이래 완전체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보지 못한 지 어언 2년이 다 돼 가다 보니, 종합운동장에 콘서트를 보러 갔던 추억들이 전생의 일인가 싶다. 그러니 비록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더라도 종합운동장에 아미들이 모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몰려 편의점에 줄을 서서 한 걸음씩 들어가고 인파를 피해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더위를 식히며 시간을 보내며 완전체 콘서트의 유사 경험을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또한 그룹 맏형 진의 제대를 기점으로 멤버들이 속속 돌아올 테니, 이제는 활동을 재개할 일만 기다리면 된다는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걸 친구와 함께 종합운동장 바로 그 현장에서 기념하고 싶었다(관련기사 :
BTS 진 만나러 잠실행, '겉돌'이어도 행복했습니다 https://omn.kr/292r1)
그 외에도 올 한 해 멤버들의 솔로앨범 프로젝트, 싱글곡 공개, 다큐멘터리 상영, 개별 멤버의 사진전시 등 많은 즐길거리가 시간차를 두고 속속 공개됐다. 나도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했지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는 완전체, 그리고 종합운동장이라는 키워드를 최우선으로 둘 수밖에 없었다.
남은 6개월, 나의 목표는
▲BTS 완전체 사진
최혜선
▲24시간 감자탕집에서 아침
최혜선
21년차 회사원인 나는 매년 회사의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 한 해 동안 추진할 목표를 정하고, 3개월에 한 번씩 목표를 적절히 실행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1년이 지나면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토대로 평가를 받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래서일까. 멤버들이 군대에 간 동안 팬으로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비장한 마음으로 실행과제를 정했다. 하나는 멤버들의 떡밥이 아무래도 줄어들 테니 그 시간을 활용해서 벽돌책을 읽겠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덕질에 돈을 쓸 일도 줄어들 테니 그렇게 아낀 돈을 제대 후 완전체 활동을 하게 되면 시작될 월드투어를 위해 비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팬인 우리가 생각했던 군백기란 이런 것이었다. 더이상 새로 만들어지는 떡밥이 없어서 과거의 활동을 차례대로 복기하며 놓친 떡밥이 없나 다시 보는 식으로 자가발전해야 하는 시간.
그렇게 다소 안쓰러운 덕질 생활을 예상했는데 실상은 달랐다. 멤버들이 한두 명씩 입대하기 시작해 전원이 군복무를 하게 되는 2023년 말까지 1년 반 동안은 멤버들이 각자 솔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완전체 BTS 덕질을 할 때보다 더 바빴다. 그러니 벽돌책을 읽을 여유시간이 군백기라고 해서 더 생기지 않았고, 발매되는 앨범과 굿즈도 빈도가 줄지 않다 보니 저축도 뜻처럼 되지 않았다.
이제 2024년이 마무리되고 나면 멤버들 전원이 제대하기까지 딱 6개월이 남는다. 복무기간이 18개월이니 6개월에 한 권씩 총 3권의 벽돌책을 읽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직 한 권밖에 못 읽었다. 남은 기간은 벽돌책 두 권을 더 읽고, 월드투어에 따라가기 위한 저축도 따박따박 챙겨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완전체와 콘서트라는 키워드를 동시에 만족시켜 줄 기념비적인 덕질의 나날이 다시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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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도 안 됐는데 대기 250명,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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