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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와 벌써 세 번째 만남... "혹자는 빚지고 돈 안 갚았냐고"

[인터뷰] 영화 <1승> 송강호

24.12.02 17:53최종업데이트24.12.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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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승>이라는 이 간결한 제목이 배우에겐 무엇보다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넘버3>, <반칙왕> 이후 정통 코미디 연기로부터 꽤 멀어진 것 같아 보였던 송강호가 다시금 주특기 중 하나를 꺼내도록 했으니 말이다.

배구라는 스포츠와 코미디, 그리고 성장 드라마를 버무린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낸 것 없이 세월만 보내온 김우진 역을 맡았다. 학창시절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변변찮게 성인팀 감독을 전전하다가 결국 동네 배구 교실 원장으로 사는 김우진은 한 괴짜 구단주의 제안으로 부지불식간 프로팀 감독이 된다. 2일 서울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배우를 직접 만나 영화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었다.

진짜 선택의 비밀

 영화 <1승> 스틸컷
영화 <1승> 스틸컷㈜아티스트유나이티드

<1승>은 오합지졸 선수들이 각성하고 프로리그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내달리는 과정을 그린다. 소문난 명장이 아닌 무명에 가까운 실패자처럼 보이는 김우진 감독은 전형적 캐릭터가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본인 또한 크게 흔들리고, 때론 리더십을 잃기도 하는 과정에 이 영화의 묘미가 있다.

"어제 사전 무대 인사를 했는데 어떤 나이 지긋한 관객분이 제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더라. 배구라는 게 멋진 스포츠기도 하지만, 1승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안 풀릴 때, 위축될 때, 자신감을 잃을 때가 있는데 이 영화를 보시고 나면 나만의 1승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퇴근 길에 통닭 한 마리 사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1승일 수 있듯 말이다."

평소 TV 중계로 챙겨볼 만큼 배구 팬이기도 했다던 송강호는 자신이 경험했던 스포츠 영화인 <반칙왕>(2000)을 언급했다. 배구가 팀 스포츠라는 것, 그리고 힘과 전략이 섞여 있기에 재밌지만 그만큼 영상으로 그 재미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택한 것은 극장을 나올 때 관객들이 환함을 느끼며 가길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진 개인사 때문이든 역사적 사실이든 눌려 있고, 쥐어짜는 캐릭터를 주로 해왔다. 물론 다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뭔가 관객분들에게 박하사탕 같은 환한 느낌의 작품을 하고 싶던 차에 <1승>을 만난 거지. 코미디 면에서만 본다면 <반칙왕> 이후 24년 만에 이런 캐릭터를 보러 오시는 것 같다. 그 전에 <조용한 가족>, <넘버3>가 있었는데 관객분들께도 반가운 얼굴이지 않을까 싶다. 코미디를 안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작품이 없었다.

지금까지 작품을 할 때 대중에게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아서 택한 건 단 한 번도 없다. 결과가 좋으면 너무 좋지. 하지만 제 기준은 어렵고 이상한데 너무 도전하고 싶다면 했다. 한국영화 역사에서 새로운 시도라면 마음이 간다. <1승>도 한국영화 중에선 배구를 처음 다루는 거지 않나. 물론 도전해서 잘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작들이 관객분들과 소통이 잘 안 되긴 했지. 그럼에도 안전한 선택은 안 할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유지할 것이다."

배구인들의 헌신

 영화 <1승>에서 만년 무명 감독 김우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
영화 <1승>에서 만년 무명 감독 김우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영화엔 한유미 현 해설위원을 비롯, 이숙자 해설위원, 신진식, 김세진 감독이 직접 출연한다. 한유미 해설위원은 배우들의 합숙 때 직접 코치로 도움을 주기도 했고, GS칼텍스 소속이었던 차상현 감독도 종종 특강으로 배우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배구인들의 이런 헌신과 열정에 송강호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협회를 비롯해 배구인들이 한마음으로 영화를 응원해주시는 걸 몸소 느꼈다. 선수들도 그렇고 김세진 감독님이나 여러 해설위원님들과 얘길 했는데 공통적으로 순수와 열정이 가득하시더라. 제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끼곤 했다. 영화가 배구라는 스포츠를 담고 있지만, 내 인생의 1승은 무엇일까 보신 분들이 그런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1승을 느낀다면 보람이 클 것 같다."

<동주>의 각본을 맡았던 신연식 감독을 인지한 이후 송강호는 영화 <거미집>(각본),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삼식이 삼촌>, 그리고 <1승>까지 총 세 작품을 같이 하게 됐다. 인터뷰 중 그는 감독과 동료 배우와의 일화를 전했다.

"혹자는 송강호가 빚지고 돈을 안 갚았냐며 우스갯소릴 하는데, 우연찮게 <동주>를 본 후 그 작가가 궁금해졌다. 다들 윤동주는 아는데 그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한국영화 역사에 손꼽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을 끝내고 쉬고 있는데 감독님께 전화가 왔다. 보통은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답 드리겠다 하는데, 바로 그날 만나자고 했다. 그게 <거미집>이었다.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진행이 잘 안 되다가 <1승>을 먼저 촬영하게 된 것이다. 감독님의 대본엔 독특함이 있다. 지금까진 흥행적으론 아쉬울 수 있으나 언젠가 관객분들에게 사랑받을 시기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게 <1승>이었으면 좋겠다.

장윤주 배우는 <베테랑> 때부터 봤는데 럭비공처럼 전형성이 없더라. 그 용기와 개성이 너무 부러웠다. 방수지 선수에 딱이었다. 분명 젖은 낙엽처럼 바짝 붙어서 길게 가는 그런 선수가 현실에 있을 것만 같더라. 구단주 역할 박정민 배우는 <파수꾼> 때부터 지켜보고 있다. 정말 놀랐다. 자기만의 해석력이 뛰어나더라. 본인이 출판사도 하고 여러 활동을 하잖나. 스스로 수양하는 배우구나, 그래서 사람이 입체적이구나 싶더라. 그리고 우리 영화엔 모델 출신도 있고, 실제 선수 출신도 있다. 그 다양함이 모여서 굉장한 매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배구에 등장하는 여러 플레이 중 속공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다. 해설진도 예상 못하는 그 플레이 하나로 승패가 엇갈리기도 한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배우 인생 최초의 1승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초록 물고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 데뷔작은 홍상수 감독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지만 워낙 단역이었고, <초록물고기>가 확 몰입했던 첫 작품이랄까. 당시 연극할 때인데 연출자님이 하려면 제대로 촬영하라며 배려해주셨다. 충분히 연극과 병행할 수 있었는데 다른 배우에게 역할을 넘기고, 온전히 영화에 임했지. 그때가 첫 1승처럼 느껴진다."

그의 차기작은 영화 <내부자들>의 전사를 드라마화 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영화와 동일하지만 <모가디슈> <암살> 등을 집필한 이기철 작가가 새롭게 써낸 작품이다. 이미 시즌2 제작도 확정된 마당에 송강호는 "그 사이든 언제든 밝고 흥미로운 작품도 꼭 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영화 <1승>에서 만년 무명 감독 김우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
영화 <1승>에서 만년 무명 감독 김우진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송강호 1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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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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