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안테나
2010년에 가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습니다. 취업과 스펙쌓기가 아닌 꿈을 향해 도전하는 2030세대의 사연을 찾아다니던 중 그를 만났습니다.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93학번)를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 연방공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루시드폴은 안정적인 공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음악에 전념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시기(93학번) 공학 계열 전공자였지만, 사회과학 책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왠지 모를 동료 의식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대화는 제게 많은 울림을 줬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14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껴 최근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는데,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공감되는 내용이었나 봅니다. 300명이 넘는 분들이 글을 공유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앞으로 나아지겠지 기대했는데, 달라지기는커녕 더 각박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요. 꿈과 여유를 즐길 틈조차 없는 요즘 시대에, 원하는 일과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루시드폴의 말들이 귀하게 다가와서 아닐까요.
오늘도 무료하게 웹서핑을 하며 기사들을 읽어내려갈 누군가에게 위로와 동기가 될까 싶어 그날의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다시 나눠봅니다.
[관련 기사] '워커홀릭' 공학자가 왜 가수가 됐을까 http://bit.ly/cFnnT4
잘 논다는 건 무엇일까
루시드폴은 공학도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인재였습니다. 스위스 화학회가 주는 최우수 논문 발표상도 받았고, 그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의료용물질은 미국 약품 특허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공학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5년에 걸쳐 쌓아온 커리어를 한꺼번에 포기하고 음악에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체 무슨 바람(?)이 들어 무모하게 보이는 경로 변경에 나선 걸까요.
그는 스위스에서 박사 논문이 통과되고 휴가를 냈던 일주일의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친구 집에서 쉬었다는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놀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열심히 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은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잘 놀아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노는 방법도, 논다는 것이 뭔지도 아리송했습니다. 그에게 아무도 얘기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요. 술 마시고 퍼져 있는 게 노는 건가? 여행 가는 게 노는 건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혼란에 그는 "그동안 시간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았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