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판 시스터즈' 4인방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면서 평등하게 연대한다.
JTBC
여성이 불평등을 인식한 후 경험하는 분노는 대상화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하지만 여성의 분노는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아무 잘못도 없는 정숙의 어머니 복순(강애심)이 이혼녀에 대한 인식이 두려워 이혼하지 못하고, 미혼모 주리가 자리 잡기 어려웠듯이, 가부장 사회는 많은 것을 여성의 잘못으로 돌린다. 그래서 여성들은 분노가 일 때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정숙처럼 분노를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정숙이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방판 시스터즈들의 공감과 연대의 힘이 컸을 것이다. 정숙이 이혼한 직후, 넷은 섬으로 출장을 가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성적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6회).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나누는 이런 대화는 여성들 역시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한다. 11회 자신에게 결혼 전 아들이 있었음을 밝힌 금희는 "나를 안 좋게 볼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방판 시스터즈들은 "아시다시피 저는 미혼모"(주리)고, "전과 있는 남편도 있고"(영복) "저는 남편이 바람피워서 이혼했다"(정숙)며 자신의 치부를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큰 아픔을 하나씩 공유했으니까 앞으로 더 친해지는 거야"라며 의기투합한다. 나는 이것이 여성들의 관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잘난 점을 과시하기보다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보다 친밀해지는 이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수용하게 되고 서로를 존중하게 된다.
나아가 이들의 관계는 점차 평등해진다. 한때 '사모님'이었던 정숙과 금희의 관계는 동업자로 변하고, 정숙은 금희와 나란히 누워 "우리가 이런 관계가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11회). 여전히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쓰긴 하지만, 미혼모도, 전과자의 아내도, 이혼녀도, 그리고 부잣집 사모님도 모두 평등하게 일하며 서로를 돕는다. '평등'의 경험은 자신의 힘을 믿을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이렇게 '방판 시스터즈'들은 공감과 평등에 기반한 연대로 부당함에 함께 맞서고 서로를 돌보면서 세간의 시선을 거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방판 시스터즈'의 이야기는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심신 등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도 그 시절의 패션과 소품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시대 배경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 생각엔 2024년 현재의 이야기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사회에 전반에 흐르고 있고, 이를 늘 경계하며 지내야 하니 말이다.
드라마 초반, 여성을 대상화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드라마의 한계를 보는 듯해 답답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 한계야말로 현실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드라마는 이를 알려준 듯하다. <정숙한 세일즈> 속 방판 시스터즈들의 분노 그리고 공감과 평등에 기반한 연대는 2024년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들임을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