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9월 11일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열린 넷플릭스 예능 '요리 계급 전쟁 흑백요리사'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필자의 어머니는 음식을 꽤 잘하셨다. 어머니가 이웃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이웃 아이들은 자기 엄마에게 '엄마도 이런 음식 해 줘'라고 칭얼댔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난 어릴 적부터 요리에 비교적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비록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였지만, 음식점 사장을 수년 경험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주로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았지만 말이다.
전에 봤던 그 예능?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 인기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한식대첩>, <마스터셰프 코리아>와 같은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다. 처음 이 예능을 접했을 때 '그래 봐야 익히 봤던 경연예능?'이라는 지레짐작이 머리를 스쳤다.
프로그램 자체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독창성을 보였다. 심사위원이 눈을 가리고 오직 미각과 후각으로만 음식을 평가하는 방식이 특이했지만, 이미 명성을 가진 유명 조리사들과 소위 '동네 맛집' 요리사를 모아 경연을 벌인다는 설정도 상당한 흥미 요소였다.
방송에 사용된 명칭도 자극적이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냄새를 풀풀 풍기는 '계급전쟁', 자본주의 사회의 자조적 신조어인 '흙수저-금수저'를 변형한 '흑수저-백수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비슷한 경연예능의 홍수에 무덤덤해진 시청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TV 앞에 앉히고자 한 기획자(또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였다.
출연자의 면면도 흥행 요소에 부합한 듯하다. 출연한 요리사들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고급 외식 문화 담장 밖에 머물러 있는 필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다. 동네 맛집 사장이라는 '흑수저' 또한 다르지 않다. 시쳇말로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우리에게 시간을 쪼개야 하는 '다른 동네 맛집'은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현실이 '요리 예능'의 꾸준한 인기 이유일 듯싶다.
그럼에도 <냉장고를 부탁해>로 호감을 산 백수저 요리사 최현석과 요리사 출신 대형 유튜버인 흑수저 승우아빠는 필자도 아는 사람들이라 반가웠다. 특히 승우아빠의 '바베큐럽'은 우리 집에서 돼지고기 오븐구이 때 반드시 사용하는 소중한 양념이다. 그래서 그의 조기 탈락은 내겐 무척 섭섭한 결과였다. 이처럼 해당 프로그램은 전반적으로 시청자의 관심 요소를 다양하게 갖추었다.
'또 종원' 우려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포스터 ⓒ 넷플릭스
영화 팬들 사이에는 '또경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영화배우 이경영씨가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자, 팬들 사이의 '또 이경영이야?'라는 반응이 만든 신조어다. 그런 의미로 이번 예능도 '또(백)종원'이었다. 정말 웬만한 음식 예능에 모두 출연하는 백종원 대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출연했다.
필자는 예능인 '백주부'는 좋아한다. 그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중화풍 오이계란볶음은 우리 집 식탁이 변변치 않을 때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요긴한 반찬이다.
하지만, 그가 TV에 막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생각이 있다. 기업인 백종원 대표에 대한 우려다. 그는 아주 특수한 영역에서만 사용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기업인이 아니다. 그는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접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해당 업계에서도 굉장히 드문, 20-30여 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성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술집부터 아이들 간식까지 다 취급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의 대표가 공중파와 케이블 TV, 그리고 이제는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을 도배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돈볼카츠' 가맹점주들과의 송사, 구설에 휩싸였다. 또 프랜차이즈 기업이 입성하기 정말 어렵다는 주식시장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경제적 이해관계에 밀접한 당사자를, 그 이미지가 포장되거나 과장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한 예능 방송에 많이 노출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오로지 흥행을 위해 특정 기업인을 집요하게 활용하는 미디어, 그리고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기업인의 태도가 '공정'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공정은, 공평이 양심을 만날 때 만들어진다"는 말을 곱씹어 봐야 할 듯싶다.
정리하면, 백종원 대표라는 불편한 요소에도 이번 프로그램은 분명 성공한 듯하다. 기획의 핵심인 흥행은 물론, 벌써 블로그와 SNS에 등장 요리사들의 음식점이 다수 공유되며 너도 나도 '가 보겠다'는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 출연 요리사들 또한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 같다.
요리사 향한 애정은 그대로
▲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여담 1. 백수저 요리사로 출연한 요리사 '에드워드 리'의 손과 손목 곳곳의 화상 자국 등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출연 요리사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실제 내가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음식점 주방의 여성 직원 손톱 중 몇 개는 수많은 열기와 습기, 외부 충격에 거의 뭉개졌고, 손끝 대부분은 갈라져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낸 맛있고 화려한 음식이 이들의 상처와 고통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여담 2. 요식업계에서 요리의 끝은 주방 마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요리사들이 가게가 끝나면 그냥 퇴근하는 게 아니다. 이미 파김치가 된 요리사들이 정말 이가 갈리게 닦고 또 닦는다. 이는 영화 <셰프>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물론, 대형 음식점들은 이를 외주로 하기도 하지만 수익성이 박한 음식점 특성상 요리사들이 직접 갈고 닦는 게 현실이다. 음식점 경영이 힘든 대표적 이유 중 하나다.
여담 3. 기술자로서 오뉴월 뙤약볕 아래에서 소위 '노가다'도 뛰어보고, 사무직으로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서 2, 3일 밤샘 설계 작업도 적잖게 해봤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배달 대행' 기사로 거친 도로 위 세계도 경험해 봤다. 이런 내게, 했던 일 중 뭐가 제일 어려웠냐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음식점 주방이 제일 어려웠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난 그들을 정말 '리스펙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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