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어른은 벌 받아야 해!"
최근 들어 드라마, 영화, OTT 시리즈 등에서 이른바 '사적제재'( 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봇물처럼 공개되고 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SBS <모범택시2>를 비롯해서 디즈니플러스 <비질란테>, 최근 소개된 LGU+TV <노웨이 아웃>과 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2>의 주요 소재는 다름 아닌 어느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한 범죄자 단죄를 다루고 있다.
공권력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이 범람하는 각종 범죄와 이를 자행하는 악인들을 누군가가 나서 단죄하는 일련의 작품 상당수는 흥행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곤 했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일종의 쾌감은 최근 사회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최근 새롭게 방영중인 SBS 금토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 (극본 조이수, 연출 박진표)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뭔가 좀 특이하다. 제목에서 일찌감치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지옥의 중심 인물(?) 악마가 세상의 악인들을 처단하는 판타지물로 꾸며지면서 기존작들과의 차별화를 도모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부터 보험금 사건까지... 실제 범죄 모티브
현재까지 총 4회에 걸친 <지옥에서 온 판사>의 내용은 그동안 각종 뉴스 등을 통해 손쉽게 접해왔던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1-2회에선 현재 사회적 파장을 야기중인 '데이트 폭력'을 다루고 있으며 이번주 방영된 3, 4회에선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들을 연달아 죽인 인물에 대한 단죄를 그리고 있다.
그동안 봐왔던 사적 복수극은 마블+DC코믹스 속 슈퍼 히어로에 가까운 인물 또는 단체(<모범택시>), 혹은 경찰(<비질란테>, <베테랑2>)가 신분을 숨긴채 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판사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그것도 악마에 빙의된 재판관이 직접 범죄자를 처단하는 웹툰 스러운 전개가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지옥에서 악인을 심판하는 판관 유스티티아(오나라 분)이 실수를 범하면서 현실 세상 속 판사 강빛나(박신혜 분)의 몸에 들어간 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을 1년 안에 20명이나 지옥으로 데려와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악마 구만도(김인권 분), 이아롱 (김인권 분)의 도움을 통해 강빛나는 자신의 손으로 극악 무도한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기에 이른다.
불균형의 묘한 중독성
그런데 기존 사적 복수극 소재의 작품과는 뭔가 대비를 이루는 측면이 <지옥에서 온 판사>에선 자주 엿보인다. '악마'를 전면에 내새우다보니 자연스럽게 범죄 및 판타지물이라는 독자성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전개되는 각종 이야기들은 소재 특성상 고구마 여러개 먹은 느낌을 담고 있지만 풀어나가는 방식은 속전속결의 빠른 해결 뿐만 아니라 약간의 코믹스러움을 녹여내고 있다.
속물스러운 행동도 천연덕스럽게 내비치는 판사 강빛나의 행동은 상당히 과장스럽지만 이를 통해 악마가 빙의했다는 점을 더욱 강하게 시청자들 머릿 속에 각인시킨다. 그 결과 극중 범죄자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복하는 그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무거운 소재에 코믹한 전개가 분명 불균형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극중 다양한 이야기에 손쉽게 중독되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온갖 화려한 패션으로 치장했지만 재개발 지역의 주택에 거주하는 판사 강빛나의 현실 또한 엇박자 임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설득력을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그동안 발랄하고 쾌활한, 이른바 '캔디'스러운 캐릭터 중심으로 작품을 만났던 박신혜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소화하면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뤄내고 있다.
위험한 줄타기
그런데 <지옥에서 온 판사>는 통쾌함 못잖게 뭔가 답답한 심정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악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판타지 범죄물이다보니 극중 악인들은 손쉽게 지옥불로 떨어지는 결과를 맞이한다. 답답한 현실을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대신 해결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범죄가 야기하는 위험이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것이 아닌, 자극적 방식의 복수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사적 제재의 위험성 중 하나인 잘못된 피해자 발생에 대한 부분을 다소 간과한게 아닌지라는 물음표도 선사한다. 극중 악마가 자리 잡은 강빛나는 실수로 형사 한다온(김재영 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판타지 소재 답게 한형사는 다시 부활하지만 현실이었다면 위험 천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영화 <베테랑2> 속 보험금 살인 사건 가해자로 억울하게 몰린 베트남 여성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해치(정해인 분)의 행동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와 같은 사적 복수극의 범람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법 체계의 불공정성에 기인한다. 분명 죄값을 크게 치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자주 목격하면서 쌓여진 분노는 일련의 작품 제작으로 연결되는 연료 역할을 담당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법인지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정당한 복수와 과잉 폭력이라는 위험한 줄타기는 과연 <지옥에서 온 판사>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향후 다뤄질 10회 분량의 이야기는 기대와 우려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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