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스틸컷
NHK
확장, 반전, 그리고 전환
1기는 벽 안에 갇힌 인류가 벽 바깥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치는 이야기다. 인류는 거인과의 오랜 대전에서 물러나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벽 바깥엔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이 나다니는 가운데, 조사병단이라 불리는 군대만이 수시로 벽 바깥으로 나아가 인류의 역습을 위한 가능성을 모색한다.
벽 안의 평화가 지속된 지 어언 100년, 벽 안 세상의 최남단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눈앞에 이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거인이 나타난다. 거인의 기습으로 벽이 무너지고 인류의 평화는 깨어진다. 살기 위한 인류의 저항과 침입한 거인의 싸움이 지속되는 가운데, 앨런과 미카사, 아르민이란 세 아이가 조사병단에 입단하기 위해 군대에 지원한다.
2기는 1기와 3기를 잇기 위한 지리한 싸움을 그린다. 앞서 군대에 입대한 아이들이 조사병단에 배속돼 거인과의 싸움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우정과 사랑, 존중을 느끼는 과정이 흥미롭게 묘사된다. <해리포터>, <헝거게임> 등 성공한 하이틴 판타지의 성공방정식 그대로, 아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가며 다가올 위기에 대응해나가는 모습을 주요한 얼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저 타자인 줄만 알았던 거인들에게도 저만의 세계가 있음이 확인되고, 심지어는 동료라 여겼던 이들 중에서도 거인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3기는 2기의 반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게 할 만큼 파격적이다. 벽 안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인류가 실은 고립된 소국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다. 벽 바깥엔 드넓은 사막과 바다가 있고, 그 건너엔 수많은 인간과 국가가 들어찬 대륙이 있다. 어째서 앨런이 나고 자란 세상이, 인류인 줄로만 알았던 이 나라가 대대로 벽 안에 들어 근시안적 평화를 누렸는지가 3기의 관심이 된다.
섬의 인류는 조사병단을 중심으로 거인에게 빼앗긴 영토를 수복해나간다. 가장 큰 적은 첩자로 조사병단에 잠입해 있던 옛 동료 라이너와 베르톨트, 그리고 어마어마한 던지기 실력을 자랑하는 짐승거인이다. 이들에 맞서 벽으로 보호받던 모든 땅을 수복하는 인간들. 그리고 마침내 벽 바깥으로, 모든 땅을 제압해나갈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 스틸컷
NHK
역사의 짐을 떠안은 뒷세대의 고충
3기의 마지막 몇 편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야기의 초점이 벽 안에 갇힌 이들로부터 저 멀리 바다 건너 대륙의 한 국가 마레로 향한다. 마레의 외곽엔 마치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거주구역이 있고, 이곳에서 거주해야만 하는 특정한 민족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에르디안, 한때 강성했던 에르디아 제국의 후예다.
에르디안에겐 특별한 힘이 있는데 다름 아닌 거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에르디안의 시조인 유미르가 어떤 생명과 접촉한 이래 얻었다는 그 신비의 힘으로 에르디안은 열국 가운데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한다. 최초의 거인이 가진 힘이 아홉으로 나뉘어서 아홉 거인이 에르디안 가운데 계승되게 됐는데, 마레가 공작을 펼친 끝에 이중 일곱을 저들의 수하로 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결국 에르디아의 왕이 저 멀리 섬으로 도피해 거인의 힘으로 벽을 쌓고 스스로를 가두니 지난 시간의 평화가 그로부터 이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에르디안이 다 같이 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대륙에 남은 많은 에르디안은 수용소에 갇히고 온갖 멸시와 핍박을 견뎌내야 했다. 나치 치하의 유태인, 아니 오늘날 이스라엘 치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을 에르디안들은 감당한다. 그로부터 에르디안을 해방하려는 조직이 생겨나고, 테러와 이를 막으려는 공작, 탄압과 저항이 일어난다. 3기의 마지막은 대륙의 에르디안이 벽 안 세상을 찾아오는 기적적인 과거사로부터 1기와 2기의 주인공이었던 앨런의 탄생비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 애니가 그리고 있는 이야기가 참으로 깊고 넓은 것이다.
이야기 가운데 많은 부분이 현실의 반영임을 깨닫는다. 거인대전이라 불렸던 거대한 전쟁과 패퇴한 제국이 수많은 사람들을 끌고 섬으로 건너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근현대 중국사로부터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또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오늘의 민중이 고통을 감내하는 이야기는 패전 후 전범국가가 된 일본의 대중이 과거사를 대해온 태도를 알도록 한다. 그 억울함이 자연스레 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땅히 기록해야 할 역사서술을 임의로 지우고 왜곡하는 태도가 애니 속 이야기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진격의 거인> 스틸컷
NHK
자기변명과 치열한 설득 사이 '진격거'의 특별함
혹자는 앞 세대가 저지른 잘못으로 지나치리만큼 처절하게 고통 받는 에르디안의 묘사가 오늘의 일본인이 자기변명하는 꼴이 아니냐 비판할 수 있겠다. 물론 그와 같은 비판도 상당부분 이해가 된다. 에르디안이 당하는 처절한 고통에 비해, 현대 일본인이 전쟁에 대해 지는 책임은 물리적으로는 없다 해도 될 정도니 말이다.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하지도, 제대로 인정하지도 않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던 그들이 스스로 역사조차도 기록해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례의 유의미한 결합이 불편하게 느껴질 밖에 없다.
일본의 현대사와 이야기를 달리 볼 수 없는 것은 글 초입에서 적었듯 원자폭탄을 연상케 하는 설정 등 실재하는 역사와 창작물 사이의 연관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 탓이다. 과거의 죄상을 인정할지라도 거인에게 공격을 받는 지금 세대의 고통은 달리 보아야 한다고, 이 애니가 주장하고 있다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폭을 연상케 하는 초대형 거인의 뭉게구름을 거듭 표현한 건 전범국이 아닌 그 폭격의 피해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시대 일본인, 또 작가의 태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범국가, 그것도 꾸준히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려 드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자기변명을 하는 일의 중함을 <진격의 거인>은 얼마 돌아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과거의 죄상과 관련 없이 살아왔다 믿는 오늘의 일본인의 억울한 감성을 이 애니는 절묘하게 드러낸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보자면 이 시리즈가 내보인 주장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한국인, 또 일제로부터 피해를 입은 당사국 국민이 아니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이다. 각각 전범국과 피해국의 국민이란 차이가 작품을 만들고 보는 태도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같은 견지에서 한국은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베트남 참전 군인을 위로하고 존중하는 만큼, 명분 없이 침탈전에 동참한 우리의 죄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는가. 총칼로 타국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가 없기로는 한국 또한 매한가지. 시야가 가려진 곳에 선 채 나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자위하는 태도는 답이 될 수 없단 걸 이 뛰어나면서도 못난 작품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전범국 딱지는 가혹하다? 이 애니의 놀라운 변명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