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지로의 여름포스터
튜브엔터테인먼트
두 번째, 성장 또한 이와 맞닿는다. 영화의 승부수는 결말에 있다. 아이의 이름이 마사오란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많은 이가 그가 기쿠지로이기도 하리라고 여긴다. 그건 '누구누구의 여름'이란 제목이 쉰두 살 반건달보다는 아홉 살 어린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마지막 순간, 여정의 끝에서 아이는 어른의 이름을 묻는다. 그 뒤늦은 물음과 답 뒤에야 우리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마사오가 아닌 기쿠지로, 나이 든 사내임을 알게 된다. 일대 전환이다. 아무렇지 않은 반전이다. 기쿠지로는 이 좌충우돌 빛나는 여름의 주인이 된다.
통상 성장은 아이, 또 한창 자라는 성장기며 청춘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나이 든 이에게도 성장의 기회는 열려 있는 것이다. 동네 양아치로, 누군가 제 가족사를 물으면 덮어놓고 화부터 내던 사내가 마침내 제 어머니를 찾는 용기를 낸다. 마사오와의 여정이 아니었다면 결코 없었을 변화, 곧 성장이다. 제 나이에 맞는 책임을 감당하여, 배고픈 아이에게 주먹밥 두 개를 내주고 저는 하나를 가져다 먹을 줄 안다. 얻어맞으면서도 아이를 생각하여 돌아갈 수 있기를 청한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케시의 집요한 배려 덕분에 관객은 비로소 이 험악하고 거친 사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에게 기회를 허한다. 이해가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판단하기만 하는 이는 일찌감치, 그러니까 앞의 경륜장이며 자동차 절도며 또 다른 몇몇 순간에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을 테다. 그런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이해가, 치열한 이해가 판단에 선행해야만 한다.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 판단하는 이의 전제다.
이해와 성장을 담은 이 영화는 마침내 관계에 닿는다. 마사오와 기쿠지로, 또 그들이 여정 가운데 만난 얼빠지고 투박한 이들의 관계 말이다. 그와 같은 관계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한여름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늘처럼, 애정 어린 관계만 주어진다면 아무리 더운 날씨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 것이다. 펑펑 울고 난 뒤 안길 가슴이 있다면, 기댈 어깨가 있다면, 그렇다면 달라진다. 마사오가 이름 모를 변태에게 끌려간 순간을 끔찍하게 떠올리지 않을 것처럼. 그를 구해준 기쿠지로를 떠올릴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그런 관계쯤은 모두에게 공평했으면. <기쿠지로의 여름>을 지낸 뒤 기대하는 건 그런 것이다. 기쿠지로를 만나기 전의 마사오, 마사오를 알기 전의 기쿠지로는 너무 슬프니까. 다시 눈을 감고 히사이시 죠의 'Summer'를 듣는다. 화창한 여름, 그늘진 길을 걸으며 선선한 바람을 맞는다. 그곳엔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다가서지 못할 일이 없다. 기쿠지로와 마사오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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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