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더 레일웨이맨>의 한 장면.
넷플릭스
참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들은 끊이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공통적인 소구점이라면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일 테고, 작품이 그리고자 하는 바라면 참사에 대응하는 인간군상일 것이다. 놀람, 안타까움, 답답함, 분노, 슬픔 등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을 유발한다. 그런 면에서 <더 레일웨이맨>은 참사 실화 콘텐츠로서의 문법에 충실했다.
공장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참사의 시작점과 위험성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즉 보팔 가스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1만 5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 만 명의 직간접적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 드라마는 그 지점을 시작부터 끝까지 명확히 짚는다.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나아가 인간군상도 그렸는데 참사가 일어나기 전 캐릭터들의 일상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차근차근 빌드업 후에 참사 현장으로 따로 또 같이 모여든다. 아니 참사가 그들 각각을 덮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그러니 무작정 도망치거나 어딘가로 숨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면 분쟁이 있고 무분별한 분쟁은 또 다른 위험을 낳기도 한다.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분투하는 철도원들
와중에 <더 레일웨이맨>의 특장점이라면, 여타 대다수의 참사 실화 콘텐츠처럼 참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내부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과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하는 철도 역무원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유독 가스가 유출되었거니와 공장의 시설과 처우가 터무니 없이 열악했기에 참사가 시작되자마자 공장 내부 사람들은 거의 전멸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장 인근에 기차역이 있었는데 기차역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가 드나드는 공간이 아닌가. 위기이자 기회의 공간일 테니 극적 장면 연출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인들이 가스에 노출되지 않게끔 오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내부인들은 가스로부터 도망가야 했으며, 또 다른 외부인들이 도움을 주고자 오고 있다. 기차라는 게 외부로부터 최소한으로 고립되어 있는 한편 레일이 깔려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빠르게 갈 수 있고 또 기차끼리 연결도 할 수 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순간순간 해야만 하는 선택들의 모양새가 모두 나와 있다. 외부와 연결되어야 하지만 외부에서 준비 없이 들어오면 안 되고, 고립되어 있어야 하지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만히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는 게 맞는지, 뭐라도 하고자 뛰쳐 나가는 게 맞는지. 난생처음 겪는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역무원들은 한없이 이타적이다. 자신 한몸 던져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지체없이 뛰어든다. 그들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일까, 개인적인 신념 또는 상황에 의해서일까. 나라면 그때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실화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