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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잔인하고 더 억지스러워진 김순옥표 디스토피아

[TV 리뷰] SBS 드라마 < 7인의 탈출 >

23.09.24 13:10최종업데이트23.09.2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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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회 만에 벌써 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성공을 위해 딸도 친구도 이용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아무렇게 저지르는 악인들, 가짜뉴스·원조교제·10대의 학교 출산·가정폭력·납치·고문·살인교사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범죄의 향연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등장한다. 그런데 끝없이 일방적인 자극의 향연 속에서 정작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메시지와 공감대는 빠져있다.

23일 방송된 SBS 금토 드라마 < 7인의 탈출 >(연출 주동민, 극본 김순옥) 4회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들의 악행이 펼쳐졌다.

방칠성(이덕화) 회장은 실종된 손녀 방다미(정라엘)의 복수에 나선다. 방칠성은 가짜뉴스를 유포한 '주홍글씨' 채널의 운영자 주용주를 납치하고 잔혹하게 고문한 끝에 배후에 금라희(황정음)와 양진모(윤종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방칠성은 수하들에게 양진모를 죽여서라도 자신 앞에 끌고 오라고 지시하고, 자신이 금라희에게 준 재산들을 가압류했다. 이어 거짓 임신으로 자신을 기만하고 방다미에게 오명을 씌운 차주란(신은경)의 뺨을 때리고 쫓아낸다. 분노가 극에 달한 방칠성은 금라희에게 전화해 "내 돈이 손녀를 죽이는 데 쓰였더라. 신께 맹세한다. 내 나머지 돈은 금라희 널 죽이는데 쓰겠다"고 경고했다.

어제의 적이었던 금라희와 차주란은 방칠성 때문에 궁지에 몰리자 함께 손을 잡았다. 문득 금라희가 "노인네, 아직 유언장 수정 전이지?"라고 물었고, 차주란은 "아이가 태어나면 전 재산을 나한테 넘겨준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금라희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 속내를 직감한 차주란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냐"는 물음에 금라희는 "당신이랑 같은 생각"이라고 받아치며 모종의 음모를 암시한다.

방다미의 양모 박난영(서영희)은 딸에 이어 남편까지 누명을 쓰고 위기에 몰리자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다. 박난영은 학교로 찾아와 "방다미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왔던 날 무슨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만, 당황한 담임교사 고명지(조윤희)는 "다미는 퇴학처리되었기에 더 이상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다"라며 박난영을 쫓아낸다. 학교측은 이미 한모네(이유비)와 방다미의 다툼을 은폐하기로 결정했고, 고명지는 학생들에게 경고하여 입단속을 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쓸쓸하게 쫓겨나오던 박난영의 앞에 지아(정다은)가 나타난다. 지아는 한모네가 출산 사실을 방다미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사실과 증거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한모네에게 절대 지지 마라"고 응원했다.
 
박난영은 한모네의 드라마 대본리딩 현장에 불쑥 찾아와 추궁하며 "다미가 사라지면 진실이 묻힐 줄 알았냐. 학교에서 애 낳은게 너라는 걸"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한모네는 발뺌하지만 또다시 드라마 하차 위기에 놓였다. 박난영은 "넌 배우할 자격 없다. 네가 한 짓을 낱낱이 다 밝힐 테니까 두고 보라"고 선언한다.
 
이어 박난영은 방칠성에게 전화를 걸어 방다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한모네이고 그 소속사 대표가 금라희라는 사실을 알린다. 분노한 방칠성은 이휘소의 누명을 벗기고 모든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을 지시한다.

다급해진 한모네는 도움을 요청하지만 양진모에게 외면받은 데 이어, 금라희마저 계약해지서를 내밀면서 궁지에 몰린다. 그러자 본색을 드러낸 한모네는 "내가 아이를 낳은 게 맞다. 그런데 아이 아빠 궁금하지 않냐"며 금라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했다.
 
수감되어 있던 이휘소는 방칠성이 보냈다는 변호사로부터 2시간의 기회를 받아 출소한다. 하지만 변호사를 보낸 것은 방칠성이 아니었다. 이휘소는 오히려 변호사를 폭행하고 탈옥한 것으로 간주되어 함정에 빠졌다. 이휘소와의 통화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방칠성은, 이휘소를 만나기 위해 기자회견장이 아닌 덕선공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리 위에서 방칠성 앞에 나타난 것은 이휘소가 아니라 금라희와 차주란이었다.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막고 유언장이 고쳐지기 전에 방칠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곳으로 유인했던 것. 세 사람은 언쟁 끝에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금라희와 차주란은 협공으로 방칠성을 다리 위에서 떨어뜨려 끝내 살해한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방칠성의 시신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휘소는 방칠성의 살해 누명까지 쓰고 다시 체포된다. 방칠성이 사망하면서 상속자가 된 차주란은 장례식에서 거짓 눈물을 흘리며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거액의 유산을 기대했던 두 사람은, 막상 방칠성이 유언장에서 차주란에게 남긴 재산은 100억이었고 건물은 한 채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어 당황한다. 차주란과 금라희는 방칠성이 수천억에 이르는 자산을 모조리 현금화하여 어딘가에 감춰놨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해한다.
 
민도혁(이준)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양진모를 만난다. 민도혁은 법원 앞에서 이휘소와 방다미의 무죄를 주장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박난영을 목격한다.

방칠성의 죽음으로 구사일생한 양진모는 이번엔 주용주를 시켜서 박난영마저 제거하기 위하여 방화를 지시한다. 화재로 인하여 박난영과 그 윗집에 살고 있던 민도혁의 가족들까지 사망하고 만다. 장례식장에서 민도혁은 오열하며 분노를 드러내고, 한 미스터리한 인물이 나타나 거액의 부조금을 내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으로 궁금증을 남겼다.
 
< 7인의 탈출 >은 한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간 치열한 복마전과 생존투쟁을 그린 복수극이다. <펜트하우스> 시리즈를 연이어 흥행시킨 김순옥 작가와 주동민 감독 콤비가 다시 뭉쳐 만든 후속작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악인들이 집단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피카레스크(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물들 위주로 서사가 진행되는 작품)' 장르, 자극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가 속출하는 내용들은 사실상 <펜트하우스>의 속편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펜트하우스> 시리즈에 출연했다는 배우들도 다수 재등장하며, 이름만 바뀌었을뿐 전작의 빌런들이 고스란히 오버랩되는 캐릭터도 많다. 로맨틱 코미디의 히로인 이미지가 강한 황정음이나 이유비같은 배우들이 생애 처음으로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연기 변신에 도전했다는것도 눈에 띈다.
 
하지만 < 7인의 탈출 >은 <펜트하우스>보다 폭력과 선정성은 더 강화된 반면, 이야기 구성의 설득력이나 메시지는 오히려 더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펜트하우스> 역시 '김순옥표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최소한 시즌 1까지는 시의성있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인한 몰입감에서는 호평을 받았다.
 
<펜트하우스> 초반부는 현대판 부의 상징이라는 펜트하우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탐욕과 욕망은 인간을 어디까지 타락시킬 수 있는가'는 주제의식을 흡인력있게 묘사했다. 그런데 시즌 2, 3로 갈수록 주제의식와 캐릭터의 개연성은 희미해지고 그저 반복되는 자극적인 사건의 나열로 이야기를 억지로 끌고가는데 급급했다.
 
< 7인의 탈출 >은 이러한 <펜트하우스>의 매너리즘과 부정적 요소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무리 악인들이 주인공은 피카레스크 장르라고 해도 그들이 왜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게 되었는지는 납득할만한 서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 7인의 탈출 >은 인물의 내면이나 사연보다는 끊임없이 몰아치는 사건(범죄)의 연속으로 채워져있다.
 
처음부터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살인이나 폭행, 누명, 사기같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일말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보이지않는다. 전편 빌런들의 경우, 천서진(김소연)이 잔인무도해도 최소한 자식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었다는 것이나 악인들이라도 간간이 최소한 인간미를 드러내는 장치가 있었다면, < 7인의 탈출 >의 금라희나 한모네는 시종일관 인간성이 결여된 '괴물'에 가깝다.

프로 킬러도 아닌 일반인들이 백주대낮에 사람을 살해하고도 너무나 쉽게 완전범죄에 성공하고, 엄마가 자식을 폭행하거나 타인의 희생에서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모습은, 타고난 사이코패스나 이상동기범죄자(묻지마 범죄)를 연상시킨다.
 
또한 < 7인의 탈출 >은 가짜뉴스-가정폭력-출생의 비밀-아동학대-뇌물을 받는 교사-고문과 살인같은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온갖 충격적인 사건들을 총망라한다. 하지만 그 전개 방식이나 개연성은 <펜트하우스>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가깝다.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회적 이슈들을 그저 드라마의 '자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로서만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는 이유다.
 
작가는 전작들에서도 도를 넘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 등으로 민원이 폭주했고, 실제로 방송위로부터 몇 차례나 법정 제재까지 받은 바 있다. 이번에도 방영 2주만에 벌써부터 선정적이기만 하고 현실을 무시한 이야기 전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뇌물을 받고 진실을 은폐하고 심지어 학생들을 말 몇마디로 협박하여 입단속을 시키는 장면이 있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SNS 사용이 보편화된 2023년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않는 장면이었다. 방송 이후 시청자게시판에는 교사를 비하하는 내용에 대한 항의가 폭주하기도 했다.
 
작가와 제작진은 대체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통하여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일까. 물론 모든 드라마가 항상 모범적이고 교훈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 인간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존중,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그저 당장 사람들이 반응하기쉬운 자극적인 요소만 생각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7인의 탈출 >은 그저 오락성으로 용납될수있는 드라마를 넘어서,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악행들을 그저 볼거리를 위한 도구로만 전시하려는 반사회적 범죄 포르노에 더 가깝다.
7인의탈출 펜트하우스 김순옥 피카레스크 범죄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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