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후스틸컷
BBC
드라마는 닥터와 에이미, 그리고 고흐가 사람들을 위협하는 우주 괴수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즌 5의 주된 내용과는 따로 노는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의 전체 역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관심을 받는다. 그건 드라마 속 고흐의 존재, 또 그가 제가 받아 마땅한 찬사를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 덕분이다.
사람들은 안다. 닥터와 에이미가 만난 고흐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른일곱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화가의 결말을, 그리고 사망 뒤에야 주어지는 명성을 드라마를 보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의 방엔 팔리지 않은 수많은 작품들이 내걸려 있는데, 시청자들은 그 그림들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안다. 모든 성공은 그의 사망 뒤에야 이뤄지니, 고흐의 삶은 가혹하다고 느껴질 만큼 불운하게 보인다.
그가 만약 제가 거두는 성과를 알게 된다면, 현생에서 그가 겪어야 할 고통도 조금쯤은 나아지지 않을까. 이 드라마가 고흐에게 내어주는 것이 꼭 그와 같다. 그토록 위대한 작가는, 일생을 제 불운과 맞섰던 화가는 제게 마땅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 짜릿한 순간을 끝끝내 선사하는 것이다. 오르셰 미술관에 내걸린 저의 작품들과, 또 제게 주어지는 평가를 마주하는 고흐의 표정을 상상해보라. 드라마를 본 이들이 쉬이 잊지 못할 감동을 받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으리라고
▲닥터 후스틸컷
BBC
일찍이 고흐는 제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값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느냐고, 그러나 죽고 나서 나중에 그림값이 높아진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느냐고 말이다. 그는 그것이 튤립의 가격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던 네덜란드 튤립파동과도 같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화가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이죠. (중략) 그들은 튤립처럼 사라져갈 거예요.'
그러나 그는 이어 적는다. '튤립파동은 오래 전에 잊혔지만, 꽃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겁니다'라고.
시공간을 가로질러 우주의 괴물들과 맞서는 <닥터 후>가 여적 많은 이들에게 멋진 드라마로 기억되는 건 이와 같은 순간 덕분이 아닌가 한다. 이 드라마가 되살린 수많은 인물, 이를테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 또 애거서 크리스티와 빈센트 반 고흐 같은 작가들이 오늘의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감상을 일으켜왔던 것이다. 시간을 건너 제 작품으로 이후 세대에게 영감을 주어온 많은 작가가 제가 해낸 업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예술에 누군가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강한 힘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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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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