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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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은 대회를 앞두고 남승룡 코치를 찾아가 뜻밖의 부탁을 한다. 당시 서윤복은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 밖에 안 됐고. 풀코스를 뛰어본 경험이 불과 세 번 뿐인 상태였기에, 남승룡 코치에게 조심스럽게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부탁한 것.
당시 36세로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난 데다가 스승이 제자의 페이스메이커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 코치는 "자네가 기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함께 뛰어주겠네"라고 기꺼이 약속했다. 여기에는 선수시절 일장기만 붙이고 뛰어야 했던 한을 풀고 한국 태극기를 달고 뛰어보고 싶었던 남 코치의 의지도 작용했다.
그렇게 감독 손기정, 페이스 메이커 남승룡, 선수 서윤복이라는 전설의 엔트리가 완성됐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목표는 메달이 아닌 10위권 내 진입이었다. 상위권에 들어서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서윤복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쟁쟁한 선수들을 따돌리며 선두권을 달렸다. 28km 지점에 이르러 그의 앞에는 유럽 챔피언인 우승후보 피타넨 선수만 남았다. 해당 지점에 위치해있던 손기정은 "좋은 위치에 섰다. 그대로만 그냥 끌고 가면 돼. 조국을 위해서 달리는 거야. 그러니까 힘껏 달려야 한다"고 제자를 독려했다.
서윤복은 당시를 떠올리며 "손기정 선생이 달릴 때는 조국이 없었구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 코리아. 질 수가 없다. 거기서부터 다른 선수들 떼어놓고서 달아나는데, 그래서 내가 거기서부터 용케 선두를 섰다"고 회고했다.
갑자기 서윤복이 달리던 마라톤 코스에 개 한 마리가 난입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서윤복은 개를 쫓으려다가 넘어지면서 무릎과 팔꿈치를 다쳐 피가 흘렀다. 그 사이 피타넨과의 격차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서윤복은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대회 최대의 난코스로 불린 2Km가 오르막길 구간인 '상심의 언덕'에 직면하며 서윤복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서윤복은 상심의 언덕에서 체력고갈로 페이스가 떨어진 피타넨과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마침내 선두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며 1등으로 올라섰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대이변이었다. 심지어 결승점을 통과할 당시 서윤복의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 본인 최고 기록을 무려 14분이나 단축한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한편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남승룡은 36세의 나이에 156명 중 12등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그토록 바라던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뎌낸 모범생 서윤복. 제자를 위해 기꺼이 뛰어준 페이스메이커 남승룡. 기발한 작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감독 손기정까지. 세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해방된 조국의 첫 승리'였다.
일장기를 달고 마음껏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올림픽 때와 달리, 1947년에는 서울에서 성대한 환영행사와 카퍼레이드까지 벌어졌고, 세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당시 전 국민이 쏟아져나와 전국이 진동할 정도로 열광했다고 한다. 백범 김구는 금의환향한 서윤복에게 발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의미에서 '족패천하'라는 글을 써서 선물했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흘러 어느덧 77세의 백발이 된 손기정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봉송주자로 나서게 됐다. 많은 이들이 고령을 우려하여 만류했지만 손기정은 뜻을 굽히지 않고 1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훈련을 했다. 개막식 직전에는 발목을 다치는 부상도 있었다.
하지만 1988년 9월 17일 손기정은 예정대로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해 전혀 아픈 티를 내지 않고 멋지게 성화 봉송 임무를 완수했다. 1936년 일본 대표팀으로 뛰었던 손기정에게 마라톤이 투쟁이었다면, 1988년 대한민국 성화 봉송 주자로 뛰는 순간은 환희였다.
손기정은 "나로서는 남의 나라 국기로 우승했던 내가 50여 년 후에 우리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그것은 참, 성화 드는 그것이 베를린 올림픽 우승 이상의 영광스러운 것이어서.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 기쁜 걸 표현한 것"이라고 회상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보스턴 마라톤 이후로도 노년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남승룡은 평생 한국 마라톤을 위해 지도자로서의 삶을 이어왔다. 안타깝게도 남승룡은 생전 손기정과 서윤복에 가려진 '비운의 2인자', '대접받지 못한 3등'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곤 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한 사람의 가치를 모두 평가할 수 없으며 남승룡 선수가 절대 잊혀서는 안 될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설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동갑내기였던 두 사람은 2001년 남승룡 선수가 먼저 타계하고, 그 이듬해 손기정도 세상을 떠나며 나란히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두 사람들의 가족들은 남승룡과 손기정이 서로를 친구처럼, 형제처럼 생각하며 격의 없었던 관계였다고 회상했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한다. 마라톤도 인생도, 길고 긴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마라토너들은 절대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다. 작전을 상의할 감독과 코치가 있고,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힘을 주는 관중들. 때로는 페이스 메이커라는 동행자가 함께 뛰기도 한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걸어온 길도, 우리 각자의 인생도, '함께 달리는 마라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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