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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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베토벤에게는 누구보다 위안이 되어준 '불멸의 연인'으로 불린 존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이 직접 쓴 연애편지에도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며, 베토벤은 '나의 천사이자 전부이자 분신'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각별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베토벤은 편지에서 상대에 대한 달콤하고 절절한 애정은 물론이고, 개인적 고통까지 자신의 속내를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불멸의 연인'의 정체나 실명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베토벤 사후 그의 서랍에서 유품으로 편지가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서는 '불멸의 연인'의 정체가 과연 누구인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베토벤은 생전에 육체적 사랑보다는 정신적 사랑을 중시했고, 기혼녀-귀족여성-옛사랑의 친언니 등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 전문'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상대들과 나홀로 사랑에 빠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친구인 프렌츠 브렌타노의 아내였던 안토니 브렌타노. 베토벤의 제자이자 <월광>의 헌정대상으로 알려진 줄리에타 귀차르디, 실제로 베토벤과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엘리제를 위하여'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는 테레제 말파티 등이 '불멸의 연인'으로 유력한 후보에 거론된 인물들이지만 정확한 사실은 끝내 알려지지 않았다. 베토벤은 수많은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그 누구와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홀로 쓸쓸하게 남겨졌다.
1817년 47세의 베토벤은 미세하게 남아있던 청력마저 모두 잃게 된다. 이 무렵 베토벤은 자신의 장애를 솔직히 인정하고 '대화 노트'를 통하여 필기로 질문을 받으며 육성으로 직접 대답해주는 방식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고 한다. 침체기였던 1813년에서 1820년까지 베토벤은 7년간 단 6곡을 작곡하는 데 그치며 조금씩 잊혀져가는 듯했다. 이 당시 베토벤은 청력상실 외에도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건강을 잃었고, 성격도 더욱 예민하고 괴팍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마지막 희망이었고, 베토벤은 말년에 최후의 걸작으로 불리우는 교향곡 <합창>을 완성하게 된다. 1824년 5월 7일,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초연에서 본인이 지휘할 것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합창>을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의 이야기에 따르면 초연에서 청중들의 흥분에 공연이 몇 번이나 중단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모든 지휘를 마친 베토벤이 그제야 뒤를 돌아 청중들의 반응을 확인하자, 우레같은 박수가 쏟아지며 감동의 눈물을 쏟아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베토벤이 남긴 인생 최후의 불꽃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1827년 3월 26일, 병세가 악화되며 혼수상태에 빠졌던 베토벤은 57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 사망 원인은 간경변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장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했고 그의 장례식과 추모행렬에는 2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슈베르트, 체르니 등 당대의 거장들도 베토벤을 배웅하는 마지막 길에 동참했다.
역사에는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베토벤은 유난히 가혹한 운명을 이겨내고 '인간승리'를 일궈낸 주인공이라 점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며 '불멸의 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병마와 외로움, 낡은 관습에 저항하면서 치열한 삶을 통하여 음악인이자 예술가로서의 정신을 지켰다. 그리고 그의 삶은 곧 작품에 녹아들어 인류에 길이 남을 명곡들도 탄생했다. 베토벤은 떠났지만, 그의 인생과 철학이 남긴 위대한 음악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곁에서 변함없이 사랑을 받는 진정한 '불멸의 연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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