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스틸 이미지
㈜디오시네마
여성 권투선수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영화 좀 봤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대번에 떠올릴 법한 몇 편의 선배 작품이 있다. 권투라는 스포츠가 범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영화의 소재로도 각광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여자권투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쏠쏠히 등장한다. 그리고 하필 명작이 많기도 하다.
우선 떠오를 작품이라면 현역 최고참 감독이 되어버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2회 수상배우 힐러리 스웽크 주연 2004년 작품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있겠다. 그리고 카린 쿠사마&(강인한 여성전사 캐릭터의 현신 같은) 미셸 로드리게즈의 여성감독&여성배우 투톱, 2000년 작품 <걸파이트>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영화 중에도 윤재호 감독, 임성미 배우 주연으로 2021년 개봉했던 <파이터>가 있다. 물론 일본영화 중에도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선배 격 작품이 있다. 타케 마사하루 감독, 현재 일본배우 중 연기력으로 '본좌' 클래스 안도 사쿠라 주연 2014년 영화 <백엔의 사랑>이다. 어느새 제목이 가물가물하거나 적어도 명작들의 포스터 이미지쯤 떠올릴 순간이다.
선배 영화들 속에서 주인공인 여자 권투선수들은 다양한 국가와 배경에 존재하지만 공통적으로 마이너리티 그 자체를 형상화한 캐릭터들이다. 각각 화이트 트래시('백인 쓰레기'라 불리는 빈곤백인계층), 히스패닉(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이민자), 탈북자, N포세대의 전형이라 할, 하나같이 가난한 데다 미래 비전은 찾아보기 힘든 변두리 인생들이다. 그런 공통분모를 지닌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하게 본인을 옭아매는 사슬과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있는 힘 다 짜내서 자신의 가치와 삶을 찾으려는 도전기가 눈앞에 펼쳐지기에 우리는 그 영화들에 매혹당해 왔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인 점은 억지 해피엔딩 성공담을 전제하지 않는 결말이다. 이 영화들에서 세속적인 성공은 애초 최우선 가치가 아니거나, 끝내 도달하지 못할 신기루에 불과한 존재다.
물론 이런 특징은 꼭 여성이 주인공이어서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권투를 소재로 삼는 영화들 중 상당수가 성별을 떠나 공유하는 측면이기 때문이다. 가진 건 두 주먹과 맷집뿐인 하층계급의 청소년, 노예의 후손인 빈민가의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주먹과 주먹이 오가는 정면승부를 통해 성공과 명예를 쟁취해내는 드라마틱한 서사는 현실에서 흔치 않다. 그것도 구기종목처럼 팀 스포츠에서 동료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여지라곤 전무한, 사각의 링이라는 감옥 같은 공간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결정짓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는 투쟁이기에 남녀노소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게 권투의 마성이다.
권투라는 종목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의 원류이자, 모든 문화예술 분야를 부정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조차 허용할 정도의 원초적 위력을 지닌다. 그에 더해 현대사회에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마이너리티 성공드라마가 한 겹 더 덧입혀졌다. 그래서 한국에서 1970~1980년대 공전의 붐을 이뤘던 권투가 쇠락한 것은 중산층을 확장시킨 경제성장이 핵심 요인 아니냐는 분석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한국 외에는 미국은 물론 일본도 권투가 여전히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이것 또한 우리의 극한에 달한 결과지상주의와 시류를 쫓는 경향의 영향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삼박자 합이 척척 맞는, 젊은 명장의 설계가 빛나는 영화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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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여성이자 청각장애인 권투선수의 겨울에서 봄까지 몇 개월의 시간을 그가 매일 기록하는 일기장 형식의 노트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카메라는 세밀하게 주인공의 신체와 그가 오가는 일상공간의 풍경을 포착해낸다.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장면 장면이 흘러가지만 집중력을 발휘해 보고 있자면 비범함이 절로 느껴진다. 마치 정물화를 방불케 하는 잘 짜인 구성력이 대단하다. 케이코의 공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가 남동생과 함께 기거하는 월세 주택, 생계를 위해 일하는 호텔 객실, 체육관, 그리고 체력단련을 위해 구보하는 스미다 강 천변이 거의 전부다. 그 공간들을 오가는 거리 장면도 허투루 단지 이동경로로만 남지 않는다.
영화 속 배경인 아라카와 구는 도쿄에서도 2차 세계대전 이전 구시가의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바로 도쿄 대공습을 용케 피한 장소란 뜻이다. 구역 내에 강이 흐르는 덕분일 테다. 물론 주거 밀집지역이다 보니 주요 구역은 현대 도쿄 시가지와 별반 차이나지 않지만, 대로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오래된 지방 소도시 정취가 펼쳐진다. 특히 케이코의 거처와 체육관을 오가는 (마치 일본 시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처마와 처마가 이어진 것처럼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는 내리막길에서 주인공이 취하는 행동과 수직-하강 동선 표현은 음성언어를 구사하기 힘든 케이코의 심리와 상황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이 모든 장면이 (수고와 비용을 요구하는) 16mm 필름 촬영에 의해 근사한 질감으로 표현된다.
그런 치밀한 사전설계 아래 탄탄한 연기자들이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케이코 역을 맡은 배우 키시이 유키노의 얼굴 표정이 깊숙이 인상에 박힌다. 국내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그 자신은 너무나 행복해하는 순애보의 주인공, <사랑이 뭘까>로 얼굴을 알렸던 이 배우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스파링을 준비하는 복서의 등 근육으로 변신해버린다. 그렇게 자신을 개조해버리는 배우의 진면목을 미야케 쇼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감독은 참으로 집요하게 배우의 얼굴을 정면보다는 측면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가 발견한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일 테다. 그 덕분에 99분 상영시간 거의 내내 우리는 이 매력적인 배우의 눈빛과 입 꼬리가 어떤 변화를 드러내며 연속되는지 관찰할 수 있게 배려된다.
얼핏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일본 청춘영화와 스포츠 장르의 이상적 결합이 돋보이는 작은 규모의 드라마로 분류될 테지만, 의외로 본 작품의 영화적 야심은 만만찮게 다가온다. 영화의 모태가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 개념에서 기원한다는 걸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깊이 숙지하고 사려 깊은 접근방식을 통해 다시금 그 본질을 잊고 있던 관객에게 각인시키려 도전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창안했다는 이 장치는 어두운 방에 한쪽에 구멍을 뚫고 방 전체를 배경으로 외부의 풍경을 투사하는 개념으로 훗날 사진기, 그리고 영화 스크린의 역할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의 최초 원점인 셈이다.
19세기 말에 탄생해 아직 100여 년 밖에 안 되는 영화 장르는 문학이나 미술과 음악, 연극 같은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선배들은 물론 사진에 비해서도 일천한 역사가 고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참고할 선배가 잔뜩 있기에 골고루 자양분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큰 이점이다. 그 대신 앞선 분야의 문법을 답습하는 버릇 또한 물려받은 영화는 종종 자꾸만 활자로 기록된 텍스트를 이미지로 충실히 옮기는 데 스스로를 한정짓곤 한다. 그렇지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며>는 이 고질적 문제점을 숙지하고 영화만의 독창성, 즉 오직 '무빙-이미지'로만 표현 가능한 접근에 천착한다. 영화 속 배경인 도쿄 아라카와 구 일대의 경치 표현도 일품이지만, 어느 순간 케이코 역할을 맡은 배우 키시이 유키노의 얼굴이 그림책 페이지를 연속해 넘기는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건 감독의 의도된 연출 때문일 테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찾는 마이너리티의 길을 긍정하다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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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무리 전심전력을 다해 노력한다 해도 극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 누구와도 온전히 소통할 수 없다는 체념, 주변의 동정과 배려조차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자격지심, 케이코에게 현실의 장벽은 도처에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기에 포기하면 편할 지경이다. 그 무수한 일상의 한계 속에서 겁에 질린 자신을 감추고자 주인공은 더 위악적으로 타인에게 달려들곤 했을 것이다. 수틀리면 주먹부터 날리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소녀는 이내 권투라는 합법적인 폭력행사 수단에 빠져든다. 하지만 무명 복서라면 누구나 꿈꿀 부와 성공을 위한 통상적인 재능은 갖고 있지 못하다. 통상적인 스포츠 장르의 기본 덕목과 멀찌감치 떨어진 꼴이다.
주인공 케이코는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지만 그의 권투는 곧 벽에 부딪히고 말 운명이다.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도래하자 그만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고 만다면 케이코에게 살아 숨 쉬는 의미란 무엇일까. 이 순간 주인공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팍팍한 삶은 곧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여성-장애인-청년빈곤세대-비인기 사양산업-혼혈 이주민들까지 케이코와 주변인들의 사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된다. 케이코가 웅크리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혹은 스쳐지나가던 존재들의 개성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관객은 서서히 영화 속 그들의 상황에 연민하거나 공감하기 시작한다. 관객 각자가 겪고 있는 일상의 악전고투가 그들에게서 동일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각성은 주인공의 각성을 통해 구현되기에 관객은 주변 인물 캐릭터에 시선이 가느라 이야기에서 빗겨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통합력 안에서 몰입을 유지할 수 있다. 즉 케이코가 자기 한계에 갇혀 세상을 향한 응답 없는 울분을 토해낼 때는 보이지 않던 주인공 주변의 존재들이 서서히 그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하는 방식을 취하는 연출이다. 전반부에는 그에게서 사람들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지만 후반부에서는 반대로 주변 인물들이 조명되고 케이코와 그들이 함께 어울려 빛난다. 케이코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 각자의 사정이 스며드는 셈이다. 영화는 케이코의 고집스런 생존투쟁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문득 잊고 있었던 파랑새를 바로 등잔 밑에서 발견하는 여정을 (영화가 가진 '활동사진'이란 본질에) 충실하게 구현한다.
영화는 내내 정교한 세밀화로 주인공과 그가 속한 배경을 묘사해낸다. 어둡지만 따스하기도, 밝지만 차갑게도 자유자재로 구현되는 빛과 사물의 이미지에 우리가 현혹되어갈 즈음, 기이하게도 그 정밀하던 이미지는 점점 빛의 궤적이 표시하는 움직임 그 자체로 환원되며 희미해져간다. 심지어 영화 내내 과잉 수준으로 클로즈업되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 최종 장에 이르러 완전히 풍경의 일부로 스며들어버린다. 결국 케이코는 주변을 살피고 믿게 되면서 세상에 자기 혼자만이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에 도달해 세계에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케이코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그가 아라카와 동네 천변에 녹아듦으로써 주인공의 투쟁이 (세속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영화의 끝까지 그의 모험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키시이 유키노란 배우의 얼굴을 잊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 <작품정보>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SMALL, SLOW BUT STEADY
ケイコ 目を澄ませて
2022|일본, 프랑스|드라마
2023. 6. 14. 개봉|99분|전체관람가
감독 미야케 쇼
주연 키시이 유키노(오가와 케이코 역)
출연 미우라 토모카즈(체육관 회장 역), 미우라 마사키(체육관 매니저 코바야시 역),
마츠우라 신이치로(체육관 트레이너 마츠모토 역), 나카시마 히로코(케이코 엄마 역),
사토 히미(오가와 세이지 역), 센도 노부코(체육관 회장 부인 역)
수입 및 배급 ㈜디오시네마
2022 96회 키네마준보 BEST10 1위 일본영화대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독자선정 감독상
2022 46회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2022 77회 마이니치 영화 콩쿨 일본 영화 대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촬영상, 녹음상
2022 36회 타카사키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2022 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엔카운터 부문
2022 66회 BFI런던영화제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2022 35회 도쿄국제영화제
2022 52회 몬트리올뉴시네마국제영화제
2022 23회 부에노스아이레스국제독립영화제
2022 21회 달라스아시안영화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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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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