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이관희 '간다'16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SK 나이츠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LG 이관희가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2023시즌 서울 SK와 창원 LG의 KBL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는 이른바 '마네킹' 더비로 불리우고 있다. 창원 LG의 이관희가 4강 시리즈를 앞두고 "SK 수비는 나에게는 한 명의 마네킹에 불과하다"고 도발한 데서 비롯됐다.
NBA와 달리, 보수적인 한국농구 문화에서 그동안 상대팀이나 선수를 저격하는 트래시 토크가 드물었던 데다, 발언 자체도 상당히 수위 높은 편이었기에 이관희의 도발은 여러모로 큰 화제가 됐다.
이관희의 자신감에도 이유는 있었다. 이관희는 올시즌 SK와 치른 정규리그에서 6경기 모두 출전하여 평균 17점 3.2리바운드 3어시스트 1.5스틸, 3점슛 45.5%를 기록했다. LG 선수를 통틀어 SK를 상대로 가장 좋은 기록이었다. LG는 SK와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 3승 3패로 박빙이었으나 2위 싸움에서 승리하며 4강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관희로서는 중요한 봄농구를 앞두고 SK의 상승세를 견제하고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앞장서서 '스피커'를 자처한 것.
하지만 가넷과 조던의 에피소드에서도 보듯이, 실력과 결과가 받쳐주지 못 하는 트래시 토크는 결국 '양날의 검'으로 돌아온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LG는 이관희의 도발과 4강 직행 어드밴티지가 무색하게,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SK에게 내리 내주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SK는 14일에 1차전에서 73-68, 16일 2차전에서 92-91로 2연속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시즌 디펜딩챔피언 SK는 정규시즌 6라운드부터 6강 PO플레이오프를 거쳐 4강전까지 내리 14연승을 달리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특히 SK는 이번 봄농구 시즌에만 6강 2, 3차전, 4강 1, 2차전까지 두 자릿수 점수차 열세를 극복하고 거둔 승리만 벌써 4번이나 될 만큼 '역전의 명수'로 등극했다.
역대 4강 플레이오프 1, 2차전 연승 팀의 챔피언결정전 진출 확률은 100%(28회 중 28회)다. SK가 이대로 챔프전까지 진출한다면 2020-2021시즌 안양 KGC 인삼공사(정규리그 3위, 챔프전 우승)가 세웠던, 6강 PO부터 시작한 팀이 챔프전까지 '10전 전승'을 올렸던 기록을 재현할 수도 있다.
반면 2018-2019시즌 이후 4년 만에 봄농구로 돌아온 LG는, 4강 직행 프리미엄이 무색하게 플레이오프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 하고 스윕을 걱정해야 할 벼랑 끝에 몰렸다. LG는 통산 5할이 넘는 정규리그 승률(691승 665패, 승률 .510)과 달리 플레이오프 통산 승률은 현재까지 28승 52패(.350)에 불과할 만큼 유독 단기전에 약했다.
또한 LG는 '2위 징크스'도 있다. 올시즌을 포함하여 역대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5번이나 2위를 기록했는데 이 중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것은 단 1번(2000-2001) 뿐이었다. 1997-1998시즌(vs. 부산 기아), 2002-2003시즌(vs. 원주 TG삼보), 2006-2007시즌(vs. 부산 KTF)에 올해 SK에 패한다면 3위팀에게만 역대최다인 4번이나 '업셋'을 당하는 불명예 진기록의 주인공이 될 위기에 놓였다.
LG에 별 도움 안 된 이관희의 도발
▲SK, LG에 1점 차 승리16일 경남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창원 LG 세이커스와 서울 SK 나이츠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종료 후 LG에 92대 91로 승리한 SK 선수단이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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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를 쳤던 이관희의 시리즈 활약은 어땠을까. 1차전에서 이관희는 28분 25초를 소화하며 고작 6득점 3리바운드 3스틸에 그쳤다. 야투를 11개나 시도했으나 림을 가른 것은 3개 뿐이었고 3점슛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2차전에서는 19득점으로 레지 페리(31점 13리바운드)에 이어 LG 국내 선수중에는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며 체면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원투펀치인 두 선수가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에게 패스를 제대로 주지 않으며 팀플레이를 망친 것인 것이 오히려 역전의 빌미를 허용했다. 또한 이관희는 결정적인 순간에 체력이 떨어지며 4쿼터 승부처에 벤치로 물려나야 했고, 팀이 경기 종료 직전 SK 리온 윌리엄스에게 역전 위닝샷을 허용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봐야 했다.
반면 이관희가 마네킹이라고 평가절하했던 SK 선수들은? 모두 중요한 순간에 펄펄 날았다. 1차전에서 최성원과 최원혁, 오재현 등은 평소보다 더욱 열정적인 수비로 달려들며 이관희를 꽁꽁 묶었다. 이관희의 전매특허인 '시계 세리머니'를 따라하거나 패러디하는 장면들도 눈에 띄었다.
2차전에서는 허일영이 돋보였다. 전문슈터인 허일영은 최성원이나 최원혁처럼 수비가 능한 선수는 아니다. 허일영은 수비에서 이관희를 1차전처럼 잘 막지는 못했지만, 대신 이관희보다 더 많은 24점을 올리며 공수마진에서 오히려 우위를 점했다. 2점슛 성공률 100%(4/4)와 자유투 성공률 100%(7/7), 3점슛 성공 개수(3개)와 성공률(50%) 등 효율성에도 모두 이관희보다 월등한 우위였다.
허일영은 이날 승리 이후 아예 직접적으로 이관희를 언급했다. "이관희가 우리 선수들을 마네킹이라고 이야기하더라. 하지만 최원혁, 최성원, 오재현은 모두 수비 5걸에 선정된 바 있는 선수들"이라고 동료들을 옹호하며 "이관희도 나에게 점수를 많이 줬다. 이관희가 우리 앞선 자원을 마네이킹이라고 생각하듯, 나도 이관희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반박하며, 코트에 이어 입담에서도 제대로 복수했다. SK 선수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이관희의 발언을 듣고 상당히 이를 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이관희의 트래시 토크 시도 자체가 '잘못된 언행'이었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너무 선을 넘지않는 범위라면, 이러한 적당한 신경전도 승부의 재미를 높여주는 양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만 놓고 봤을 때 이관희의 도발이 결과적으로 LG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 반면, 오히려 SK 선수들의 승부욕과 전투력을 높여주는 자극제가 되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시리즈가 이대로 반전없이 SK의 완승으로 끝나면, 이관희의 마네킹 발언은 두고두고 엄청난 흑역사로 남게 될 전망이다. 과연 이관희와 LG는 벼랑끝에서 무언가 반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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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도발했는데 2연패... 독 되어 돌아온 이관희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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