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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마음 컸다... '다음 소희'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

[인터뷰] 영화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23.03.17 20:31최종업데이트23.03.1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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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소희>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 (주)트윈플러스파트너스


한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에 프랑스가 먼저 반응했다. 영화 <다음 소희>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이 있었던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선 특히나 청년층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한 관객은 상영 직후 감독을 붙잡고 "우리 세대 이야기를 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가 어느덧 누적 관객 10만을 돌파했다.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을 지난 13일 서울 홍대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개봉 첫주만 해도 큰 상업영화들 틈에서 관객이 들지 않아 마음고생이 있었다던 정 감독은 말 그대로 전국 이곳저곳 관객이 찾아주는 곳이면 달려가 GV(관객과의 대화)를 소화 중이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경남 진주 일정을 앞두고 짬을 냈던 것. "할 수 있는 한, 시간이 되는 한 제가 찾아가려 한다"라며 그가 웃어 보였다.
 
"영화의 영향력, 생각보다 크다"

알려진 대로 영화는 2017년 전주에서 발생한 LGU+ 고객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사망한 고 홍수연씨 사건을 모티브 삼고 있다. 산업체 파견형 실습 제도의 폐해를 고발하는 이 영화는 고교생 소희(김시은)가 비극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그 비극을 인지한 형사 유진(배두나)이 진실을 추적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개봉 후 <다음 소희>는 정치권에서 적극 호명되기도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SNS에, 그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해당 영화를 언급하며 고교생 실습제, 저임금 노동자 처우 개선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국회에 계류하다 사장될 뻔한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정의당 이은주 의원 발의)이 교육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통과 전망도 밝다. 정주리 감독은 "영향력 있는 분들이 영화를 봐주시고 그렇게 힘써주셔 고마운 일"이라면서도 "그간 시기가 안 맞든 어떤 이유로든 산재된 좋은 법안이 많을 텐데 이번 사례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논의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제가 우리 사회 전반 깊은 곳까진 모르기에 이 영화를 할 때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 싶다. 왜 고등학생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는지 학교는 왜 그런 곳에 보내는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영화에서 소희가 담임 선생님에게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대목이 있다. 학생이 현장에서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게 무슨 일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나. 그리고 학생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기초적인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노동에 국한한 문제가 아닌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면 그것 역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물론 우려 또한 있었다. 정주리 감독은 "국내 개봉 전까지 가장 걱정했던 게 마치 영화가 한국 내 특성화 고등학교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하나의 사례를 최대한 현실적으로 만든 걸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앞서 칸영화제 관객 이야기처럼 한국뿐 아닌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고민할 보편적 담론으로 관객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2주차 때부터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단체 관람이 쇄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를 본 특성화고 출신, 재학생들이 지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개선을 고민하시더라. 그리고 함께 봐야겠고,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눠주셨다. 한 콜센터 노동자분께선 영화 보는 게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피했는데 막상 본 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울컥했다.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개봉 이후에 단체 관람이 이어졌다. 개봉 첫 주엔 배급사도 그렇고 성적이 좋지 않아 참담한 심정이었는데 주말 지나고 급속도로 문의가 이어졌다고 하더라. 배급사에 연락 없이 지역에서 관객들끼리 모여서 보는 일도 많았다고 들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람 방식이 좀 달라졌어도 <다음 소희>는 꼭 극장에서 많이들 보시길 바랐다. 함께 보고 함께 얘기하시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관객분들이 많이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단 한 번도 개봉 후 관객 수를 예상해 본 적 없다면서도 정 감독은 "다만 이 이야기를 꼭 만들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강했다"고 고백했다.
 
"소희의 죽음, 그것을 쫓고 이해하려 한 유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 영화 안팎에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걸 할 수 있는 게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완성했다. 해외 관객과 국내 개봉을 거치며 지금은 제 생각 이상으로 영화의 힘이 있다고 느낀다. 첫 영화였던 <도희야> 때도 물론 느낀 바가 있지만, 이 영화는 특히나 영화가 관객분들 마음에서 작용하는 힘이 상상 이상인 것 같다. 제게 칭찬이나 좋은 말씀 해주실 때마다 과분하다는 생각이다. 제 역량보다 과분한 말씀을 듣고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과 제작자 김동하, 배우 김시은이 지난해 10월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다음 소희>의 수호자들
 
정주리 감독은 함께한 스태프, 배우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을 강조했다. 특히나 배두나는 <도희야>로 인연을 맺은 이후 이번 영화가 나오기까지 마중물 역할부터 직접 출연까지 하며 힘을 보탠 장본인이다. 가장 먼저 감독은 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고, 배두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역할로든 감독님 곁을 지키고 싶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말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수호자라는 표현이 딱 맞다"며 정 감독은 말을 이었다.
 
"마음뿐 아니라 실제로 절 지켜주셨다(웃음). 저라는 작가를, 이 영화를 지켜낸 가장 큰 공로자다. 소재도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너무 힘들고 위험한 시도인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대로 영화가 나와야 한다 생각하셨고, 기꺼이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했던 것 같다. 출연 결정 이후 투자도 수월해졌고 촬영장에서도 유진을 연기한 배우로서도 그렇고 현장 스태프들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였다. 영화 촬영 후 바로 할리우드로 가야함에도 계속 신경 쓰고, 체크하셨고 영화 완성 때까지도 함께 해주셨다. 
 
김시은 배우도 신인인데 소희를 너무나 잘 이해해주었고 거기에서 나아가 비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겐 행운이었지. 어쩌다 보니 시은 배우의 데뷔작이 <다음 소희>가 됐다. 다른 장편이 개봉이 밀리게 됐는데, 그의 데뷔를 함께 한 것 같아서 기쁘다. 제작진을 비롯해 작은 역할을 해주신 배우분들 모두가 하나가 됐다. 우리가 만들어 낸 하나의 힘이 관객들로 인해 더 큰 힘으로 돌아온 것 같다."
 

정주리 감독은 <다음 소희>를 시작할 때 마음을 곱씹었다. 한 시사 프로에서 사건을 접한 후 받았던 충격, 그리고 영화를 결심하기까지 그는 "부끄러운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막연하게 뉴스를 봤을 땐 대체 왜 젊은 아이들이 그런 데서 일할까 부모는 뭐하는 사람이지 싶은 생각 정도였다. 좀 더 알게 되면서 이건 이렇게 지나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현장실습이란 것 자체도 몰랐다. 제가 느낀 그 거리감이 참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은 왜 그리 안절부절 하며 바라보았을까 싶었다. 탄핵은 나와 가깝고, 이 사건은 나와 먼 일인가?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 같다.
 
좀 더 들여다보면 유진이란 인물은 소희라는 아이가 죽었기에 등장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좋은 어른이 아니라 비극이 있었기에, 거기에 관심을 가졌기에 유진의 행동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너무 늦었지만 더 늦지 않겠다는 바람으로 저도 마음을 다잡고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소희 죽음 자체도 엄청난 비극인데 그 이후 벌어진 일이 더 비극이지 않나. 죽음 자체를 충분히 애도하지 않는 그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 그 얘길 꼭 하고 싶었다."

 
정주리 감독은 홍수연 학생의 아버지이자 유가족인 홍순성 선생을 이야기를 꺼내며 인터뷰 말미 관련 법안이 꼭 무사히 통과되길 바라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오래 고통받아 온 세월이 그래도 의미가 있으려면 법안이 잘 나와야 하고, 그걸 계기로 더 깊은 논의들이 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감독 또한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다음 소희 정주리 배두나 김시은 현장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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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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