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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가 보여준 피해자들만의 강력한 무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글로리>

23.03.15 17:44최종업데이트23.03.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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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포스터. ⓒ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왕'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필로를 쌓아온 김은숙 작가, 2003년 데뷔 후 20년 동안 정녕 수많은 화제작을 써 내려왔다. 개인적으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을 챙겨 보지 않았는데, <파리의 연인>을 필두로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이 작품 내외적으로 그야말로 전 국민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대와 2010년대 드라마계를 넘어 문화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것이다. 

2020년대에도 계속되는 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로 해냈다. 단순 화제작 급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킬 만한 반향을 이끌어 냈다. <태양의 후예>로 완벽하게 합을 맞췄던 송혜교와 다시 한번 완벽하게 호흡을 맞췄다. 총 16부작을 일도양단해 전반 8부를 part 1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 12월 30일에 공개했고 후반 8부를 part 2라는 이름으로 2023년 3월 10일에 공개했다. <기묘한 이야기> <종이의 집>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히트작들의 마지막 시즌 때 써먹은 방법이다.

넷플릭스가 애초에 <더 글로리>를 대히트 예정작으로 산정하고 펼친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part 1은 비영어권 1위까지 오르는 등 꽤 반향을 일으켰지만 대히트작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감이 있었다. 반면 part 2는 공개 직후 연출자의 학폭 인정 논란에도 불구하고 part 1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part 1 공개 후 2개월이 훌쩍 지났으니 처음부터 다시 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더 글로리>의 영광이 어디까지 그리고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혼까지 강탈 당한 문동은의 복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파트2 한 장면. ⓒ 넷플릭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영위하던 여고생 문동은(송혜교 분), 어느새 일진의 먹잇감이 되어 있다. 금수저 박연진(임지연 분)을 필두로 역시 금수저인 전재준(박성훈 분)과 이사라(김히어라 분) 그리고 평범한 집안의 최혜정(차주영 분)과 손명오(김건우 분) 5명이 문동은의 영혼까지 앗아간 일진을 구성하고 있다. 문동은은 자퇴하며 일진의 행태를 고발했으나, 돌아온 건 더더욱 심해진 괴롭힘과 담임의 밑도 끝도 없는 폭언 폭행 그리고 그녀를 버리고 도망쳐 버린 엄마.

죽지 못해 살아가던 문동은은 일진 5인방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기로 한다. 박연진의 딸이 다니는 학교 교사가 되는 게 최우선, 이후 박연진으로 하여금 '사회적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나머지 4인방을 이간질시켜 가며 그녀 주위를 황폐화시키기로 다짐한다. 그녀의 복수는 치밀한 계획은 물론 다방면으로 철저한 실행이 수반되어야 했으니 돈도 많이 필요했다.

영혼까지 강탈 당한 만큼 감정을 찾아보기 힘든 문동은, 그래도 그녀가 인복은 있는지 서울주병원장 아들이자 의사 주여정(이도현 분)과 세명재단 이사장 자택 가사 도우미였던 강현남(염혜란 분) 그리고 성우방직 근무 당시 동료였던 구성회와 문동은이 살게 된 에덴빌라의 건물주 할머니와 문동은의 고교 시절 보건 교사 안정미 등이 따로 또 같이 크고 작게 멀리서 가깝게 그녀를 조력한다. 박연진의 남편이자 재평건설의 대표 하도영(정성일 분)은 문동은을 조력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며 박연진, 전재준과 대립하니 지향점은 같다.

과연 문동은과 그녀의 조력자들은 권선징악을 행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악을 처단할 수 있을까? 악을 처단하고자 스스로가 괴물의 길에 들어선 문동은은 어떻게 되었을까?

피해자의 연대, 가해자의 적대

복수 이야기는 고대 신화 때부터 계속 되어 왔기에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이 억울함을 내가 아니면 완전히 풀어 줄 수 있는 이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유서가 깊은 만큼 다양하고 또 통용되는 결말의 양상도 존재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든지, 복수가 끝난 후에 남는 건 허무일 뿐이라든지. 그래서 근래 와서는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많은 공력을 할애한다.

<더 글로리>도 part 1을 통틀어 문동은의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철저하게 빌드업을 시전한 것인데, 일진 5인방의 믿기 힘들 만큼 파렴치한 짓(그 유명한 고데기 고문 등)은 물론 담임과 엄마까지 즉 세상이 문동은을 철저하게 버렸다. 그녀는 죽음을 머금고 유예한 채 박연진 등등을 향한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문동은이라는 개별적인 존재가 철저하게 버림 받는다는 특수한 이야기가 비로소 수많은 피해자들의 보편적인 복수의 바람에 발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엔 가지각색의 이유로 또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문동은을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매우 큰 몫을 차지한다. 피해자, 생존자들의 연대는 가해자들이 가지지 못하는 그들만의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서로를 물고 찢을 수밖에 없다.

<더 글로리>가 권선징악의 구도로 아주 잘 그리고 철저하게 그려내고 있는 부분도 그 지점이다. 피해자들은 비록 같은 가해자가 목표가 아니더라도 연대하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든 적으로 돌리며 적대한다. 복수의 칼끝은 그들을 향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사회 병리적 학교폭력
 

<더 글로리> 스틸컷 ⓒ 넷플릭스

 
문동은의 조력자들, 그러니까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커리어를 걸고 두려움을 뒤로한 채 그녀를 돕는 이들 중 그녀의 가족은 없다. 반면 문동은, 강현남의 복수 대상에는 가족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박연진, 하도영, 전재준의 관계는 철저히 가족적이다. 가족의 모양이 지극히 보편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가족의 모양이 제각각 개별적으로 특수한 이야기를 양산하고 있다. 천륜에 의한 가족은 수명이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피해자들의 연대는 곧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연대, 나아가 사랑이야말로 피해자를 살게 하는 진정한 힘이라고 할 때, 내가 선택하고 서로가 선택한 가족은 더 많은 사람을 살려 행복한 삶까지 영위하게 하는 데 절대적인 의미일 테다. '복수'라는 키워드에 온 시선이 집중된 <더 글로리>가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스토리는 복수의 과정에 있지만 메시지는 복수 이후에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새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를 넘어 사회 병리적 문제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단순히 치기 어린 시절 학교라는 곳에서 일어난 무개념 일탈의 개념이 아니라, 알 거 다 아는 자의식이 탑재된 나이에 학교를 울타리 삼아 자신 안의 악마성을 시험해 보는 용도로 폭력을 일삼았고 일삼고 있으며 일삼으려 한다. 이 작태를 어찌 "그 나이 땐 치고받고 싸우잖아"라며 아무렇지 않게,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더 글로리>의 국내적, 국제적 대흥행이 많은 일을 해 줄 거라고 믿는다. 경각심을 충분히 심어 준 후 의식 변화와 법 개정까지 실질적인 면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땐 너무 어려서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피해 당사자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따위의 글을 더 이상 보기 싫다. 정작 현실에선 피해자들은 계속 피해를 받으며 움츠린 채 살아가고 가해자들은 계속 가해를 하며 어깨 피고 살아간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 연진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더 글로리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연대와 적대 복수와 권선징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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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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