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안양KGC 인삼공사가 동아시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KGC는 3월 5일 일본 오키나와의 오키나와 아레나에서 열린 동아시아슈퍼리그(EASL) 결승전 서울 SK와의 'KBL 더비'에서 90-84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KGC는 대릴 먼로(21점 16리바운드), 오마리 스펠맨(19점 11리바운드), 변준형(16점)이 승리를 이끌며 김선형(25점)과 자밀 워니(22점)가 분투한 SK의 추격을 따돌렸다. 대회 내내 엄청난 폭발력을 보인 스펠맨은 최우수 선수(MVP)의 영광을 얻었다. 올해부터 KGC의 지휘봉을 잡은 김상식 감독은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EASL은 축구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유럽챔피언스리그(UCL)처럼, 홈&어웨이 형식의 아시아 농구 클럽 대항전을 목표로 출범한 리그다. 2017년부터 '슈퍼8', '터리픽12' 이벤트 경기 형식의 시범대회를 운용하며 준비과정을 거쳤고, 2021년 12월 1일 FIBA로부터 고식적으로 인정받아 지금의 EASL이라는 이름의 대회를 정식 출범시켰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필리핀,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운영 중인 프로리그 최강팀들이 모두 참가하여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대회 창설의 발목을 잡았다.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농구 강국인 중국 팀들의 참가가 무산됐고, 홈&어웨이 일정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며 대회 규모와 일정이 모두 연기-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초대 EASL은 홈&어웨이 일정 대신 '챔피언스 위크' 형식을 도입하며 총 8팀이 참가하여 3월 1일부터 5일까지 일본에서 일정이 진행됐다. 참가팀들은 각국 리그 일정을 고려하여 조별리그에서 두 경기씩만을 치렀다. 승수-승자승-골득실 순으로 순위를 매겨 각 조 1위가 결승전에, 조 2위는 3·4위 순위결정전에 오르는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초대 대회는 KBL의 축제가 됐다. 한국 프로농구을 대표하여 EASL에 참가한 안양 KGC와 서울 SK는 조별리그 A조와 B조에서 전승(2승)을 거두고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하며 우승을 놓고 집안싸움을 벌였다. 두 팀은 지난해 5월 열린 2021~22시즌 KBL 챔피언결정전에 이어 1년만에 국제대회에서 리턴매치를 벌였다. KBL에서는 SK가 4승1패로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올시즌은 국내 정규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KGC가 EASL까지 거머쥐며 보기 좋게 설욕에 성공했다.
한국농구만의 매력과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것은, 이번 EASL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수 있다. 일단 KBL팀들이 EASL에서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2인 보유 1인 출전제였지만, EASL은 2명 동시 출전이 가능했고 이는 KBL팀들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트윈타워가 돋보인 SK 자밀 워니와 리온 윌리엄스, 내외곽의 조화를 추구한 KGC 오마리 스펠맨과 대릴 먼로는 KBL 경기에서는 함께 뛸 기회가 한번도 없었지만, 오랫동안 한팀에서 호흡을 맞춘 시너지 효과를 증명하며 그야말로 물만난 고기같은 활약을 펼쳤다.
MVP 스펠맨은 4일 산미구엘 비어맨(PBA)과의 경기에서 개인 커리어 하이인 53점을 폭발시키는 등 3경기 평균 31.3점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 외국인 선수다운 기량을 과시했다. 2옵션 먼로는 산미구엘전에서 15점 17리바운드 14어시스트로 대회 첫 트리플더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SK의 워니와 윌리엄스는 필리핀 TNT전에서 동반 40점-40 리바운드 합작(워니 21점 19리바운드, 윌리엄스 20점 21리바운드)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외국인 선수들에게만 의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상대팀들에게도 KBL 경험이 있는 앤드류 니콜슨, NBA 경력의 마일스 포웰 등 수준급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KBL과의 차이는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과 수비 조직력에서 갈렸다.
지난 시즌 국내 선수 MVP 최준용이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는 결장했지만 SK 김선형, KGC 변준형 등은 KBL 정상급 국내 선수들은 국제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돌파력과 속공전개능력이 좋은 KBL 가드들은 스피드를 앞세워 상대 수비를 마음껏 휘젓고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할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다. 상대팀들은 한국의 빠른 공수전환에 혀를 내둘렀다.
또한 공격력과 선수들의 개인능력에 의존도가 높았던 상대팀들에 비하여 KBL 팀들은 외국인 선수들도 인정할만큼 맞춤형 수비 전술이 아시아에서 고도로 발전한 리그중 하나다. 볼핸들러에 대한 강한 압박, 기동력으로 내외곽을 넘나드는 로테이션 수비는 상대팀들이 KBL 팀들을 어려워한 가장 큰 이유였다.
국내 프로농구는 2000년대 이후 인기 중흥과 팬덤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대표팀 역시 2014년 홈에서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정상을 밟지 못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문제 등이 겹쳐 국제대회에 나설수 있는 기회도 제한됐다.
EASL같은 국제클럽대항전과 새로운 이벤트의 등장은, 한국농구에 대한 관심 회복과 인기 면에서도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국제경쟁력은 자국리그의 흥행에 있어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KBL 역시 우물안 개구리 농구같은 한국식 농구에서 벗어나 다양한 리그와의 교류를 통하여 글로벌 마케팅 포인트와 스타 발굴를 모색할 수 있다.
농구를 소재로 한 일본 스포츠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국내 흥행돌풍이나 NBA(미프로농구)의 높은 인기에서 보듯이, 국내에서도 농구 팬덤의 수요가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 잠재력을 외부로 유도해낼만한 확실한 흥행포인트를 아직 찾지 못한 것에 가깝다.
물론 EASL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차 중국이나 서아시아팀들까지 규모를 확장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북미나 유럽에 견줄 수 있는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할수만 있다면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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