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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벌레가 음악으로... "실제 생활에서 영감받아 곡 써요"

[인터뷰]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엄시현 작곡가

23.01.30 17:39최종업데이트23.01.3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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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시현 작곡가 프로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한국에서 새로운 디딤판이 되고 싶어요."

1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줄곧 공부와 작곡을 놓지 않았던 엄시현(23) 작곡가가 오는 2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아래 '아창제')를 앞두고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그가 써왔던 곡들이 주로 미국의 앙상블과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어 왔는데, 이번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창작관현악 축제인 '아창제'에서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게 된 것이다. 

"음악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였습니다. 이후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에 있는 월넛힐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3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 살았어요. 낯선 미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갔을 당시에는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언어나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데 쉽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사귀면서 점차 안정을 찾으면서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음악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던 당시의 환경이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특히, 힘든 시간을 견뎌온 만큼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자신의 곡을 알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을 얻은 점이 큰 수확이 아니겠냐 되물었다.

오는 2월 1일 제14회 '아창제' 공연을 앞두고 잠시 귀국한 그를 지난 27일에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집에서 만나 낯선 미국에서의 10년의 작곡 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낯선 미국에서 10년을 견뎌낸 학창시절
 

미국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엄시현 작곡가 ⓒ 엄시현

 
- 1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갔을 당시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국 월넛힐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난 위트먼 브라운(Whitman Brown) 선생님은 언제나 저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처음 미국에 와서 작곡한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 현악 4중주) 곡을 전미음악교사협회(MTNA) 콩쿠르에 출품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때 곡이 매사추세츠주를 비롯해 미국 동부 전체에서 1등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 특별히 당시의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에서 낯설고 힘든 생활을 겪으면서 썼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 곡을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맞을까요. 이때부터 피아노 독주곡, 바이올린 피아노 듀오 곡, 클라리넷 피아노 듀오 곡, 목관오중주 곡 등 다양한 편성의 체임버 곡들을 시도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늘 오케스트라 곡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좀처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러면 언제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곡을 쓰게 되었나요?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만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매년 열리는 미국 브리버드(Brevard) 음악 캠프에 참석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6주간 이어진 브리버드 캠프에서 다양한 체임버 곡들과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어요. 처음 오케스트라 곡을 쓰는 만큼 힘들고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요. 그래도 당시에 만든 곡이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퓨처심포니(Future Symphony) 경연대회에서 2위로 입상했어요. 이후에 오케스트라 곡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죠. 또 효과적인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관현악 연주를 위한 작곡 기법)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 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써요
 

아메리칸 컴포저 오케스트라(버팔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방안의무당벌레' 리허설 ⓒ 엄시현 제공

 
- 엄 작곡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 어떤 음악인가요? 
"이스트만 대학교 3학년 때에 쓴 '방 안의 무당벌레(Ladybug in the Room)'라는 오케스트라 곡입니다. 실제로 이 곡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수상되었을 뿐 아니라 연주할 기회도 많았어요."

- 무당벌레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특이하네요. 
"실제로 무당벌레가 제 방 안에 들어와 5달 넘게 직접 키웠어요. 방 안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다가 바닥에 기어 다니는 무당벌레의 움직임과 날갯짓을 표현했어요. 그리고 그 무당벌레를 잡으려는 제 모습도 곡 안에 담았고요. 특히 마지막에는 통 안에 갇히게 되는 무당벌레의 모습을 떠올리고 곡을 썼습니다." 

- 이 곡은 작곡하는 데 얼마나 걸렸고, 주로 어디에서 연주가 되었나요? 
"2주 만에 집중해서 완성했어요. 이후에 내슈빌 심포니, 리버사이드 심포니, 대구 MBC 오케스트라, 벨기에 JMI, 아메리칸 컴포저 오케스트라 (버펄로 심포니) 등에 선정되어 수많은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기회를 갖기도 했어요."

- 이번에 '아창제'에서 소개하는 곡은 어떤 음악인가요?
"<열대 우림 속 앵무새>라는 곡인데, 어느 주인공이 앵무새를 마법에서 풀어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열대 우림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평온, 기쁨,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화성과 리듬으로 표현했습니다." 

-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오랜 유학생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외로운 앵무새의 처지와 10년간 낯선 환경에서 작곡에 몰두해온 엄 작곡가님의 환경을 빗대어 열대우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앵무새를 저에게 빗댄다고 생각해 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하하). 하지만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흡수하려는 점이 맞는 거 같아요. 앵무새도 고유한 소리가 있지만 진정한 목소리를 찾기까지 다른 새들을 따라해 보는 거예요. 중간에 방황도 하지만, 결국엔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같은 음악입니다."

- 이밖에 기억에 남는 곡과 작곡의 배경이 되는 특이한 점이 있나요?
"Sammy&Remmy라는 One Act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The Witch of Coos 라는 내레이션이 들어간 큰 편성의 체임버, Phone Call이라는 윈드 앙상블 곡 등을 썼어요. 특히, Phone Call은 코리안윈드앙상블 컴페티션(경연대회)에 뽑혀 2년 전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그 곡도 무당벌레 곡과 같이 비슷한 점이 있어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는 것이죠." 

-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을 하나의 음악으로 표현한 것인가요? 
"네. 맞아요. 예를 들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전화로 문제점을 말했는데, 계속해서 다른 부서로 연결하고, 결국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화가 나는 심정을 담았어요." 

- 그동안 꾸준하게 미국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공연하는 첫 무대인 아창제를 앞두고 솔직한 심정은 어떤가요?
"앞에서 소개했지만, 2021년에 코리안윈드앙상블에서 'Phone Call' 작품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되었습니다. 이밖에도 클라루비노 앙상블, 대구 MBC 오케스트라, 그리고 솔로 리사이틀을 하면서 한국 무대에 여러 번 연주했지만, 이번 아창제 공연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첫 번째 공연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귀국했어요

- 아창제에 출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22년 4월에 2주 동안 갑작스럽게 곡을 썼는데 아창제에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머릿 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완성된 후 여름에 제출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하고 많은 작곡 대회를 거쳐 왔는데요, 큰 편성의 곡들이 연주되는 것이 저희 같은 작곡가에게 흔한 기회가 아니에요. 그래서 이런 경험은 저에게 늘 영광입니다."

- 클래식 작곡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음악과 영화, 게임 음악, 오디오 엔지니어링 등에서도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관심이 있어 스스로 학습하다가 로체스터 대학에서 오디오 엔지니어링 학위를 부전공으로 따게 되었어요.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많은 소프트웨어를 익혀나갔고 몇 년 전부터는 전문적으로 기관과 단체들로부터 의뢰받아 작곡을 했어요."

- 이번 공연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갈 텐데 이후 계획은 어떤가요?
"일단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어디서 활동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곳이 어디가 되든지 계속해서 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을 작곡하며 현대음악의 경계를 넓혀가고 싶습니다."
아창제 엄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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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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