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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만난 '계급' 다른 네 남녀의 유일한 공통점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74] JTBC <사랑의 이해>가 보여주는 사회적 맥락 속의 사랑

23.01.17 14:32최종업데이트23.01.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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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모든 고객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주 무대인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첫 회 상수(유연석)의 이런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로 드라마는 네 명의 주요 인물 상수, 수영(문가영), 미영(금새록), 종현(정가람)을 통해 이 말이 진실임을 매우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계급을 넘어 서로를 갈망하는 이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거침없이 사랑을 표현하지만, 어떤 이는 사랑의 감정을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또 다른 이는 마음을 억누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차이는 바로 이들이 놓여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존재한다.
 
<사랑의 이해>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들을 살펴본다.
 
사회계급 세계관
 
<사랑의 이해> 인물들의 사랑에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사회계급 세계관(social class worldview)'이다. 사회계급 세계관이란 특정한 경제적 계급의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태도 그리고 사회적으로 자신이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말한다. 근대 이전의 신분제 사회가 명시적인 계급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했다면, 공식적인 계급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스스로 계급을 인식하고, 이를 내면화한다.
 
이 내면화된 계급에 대한 인식은 생활방식, 행동, 물질적인 면을 추구하는 범위, 대인관계 등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대부분의 특권이 그렇듯, 특권층은 삶의 제약을 느끼지 않기에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 스스로가 특권과 거리가 멀다고 인식할수록, 그러니까 계급의 아래쪽에 속한다고 정체화할수록 심리적으로 계급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자신의 계급을 가장 잘 인식하며 사는 이는 종현이다. "지도에도 없는" 시골 출신 종현은 청원경찰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고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은행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지만, 은행 소속은 아닌 가장 불안정한 자리에 있다. 이런 그는 늘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주변을 살핀다. 8회 공개적으로 연애하자는 수영의 제안에 종현은 "알리지 말자"며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다르잖아요. 우리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것 싫어서 그래요."
 
수영 역시 계급에 민감한 편이지만, 종현은 수현이 괜찮다 여기는 면조차 조심스러워할 만큼 내면화된 계급을 강하게 인식한다.
 

사랑이 사회적 구조 안에서 작동함을 매우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이해> 포스터 ⓒ JTBC

 
서로 다른 '내면화된 계급'의 영향
 
수영은 은행에서 노란색 신분증 줄을 목에 걸고 있는 서비스직 직군이다. 실적은 제일 좋지만, 고졸 학력에 서비스 직군이라는 자리는 늘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수영은 대졸 출신의 정규직군 동료들에게 종종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매번 굳은 일에 앞장서는데 그게 바로 '자신의 자리'라고 받아들인다. 이런 수영은 상수를 사랑하지만, 쉽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다 망설이는 상수의 모습에 마음을 접어 버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종현을 택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없다는 거' (5회)
 

즉, 수영은 자신의 감정마저 자신이 지닌 사회계급 세계관 안에서 통제한다.

한편, 중간 계급에 속하는 상수의 계급 인식은 꽤나 복잡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자랐다는 면에서 그는 수영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고 명문대를 졸업한 그를 사람들은 그를 '금수저'라 부른다. 정작 자신은 부자인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 속에 살아왔음에도 말이다. 그는 이렇게 여러 계급의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지만 어느 한 계급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늘 머뭇거리고, 동시에 그 어느 계급에도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
 
미경은 최상층의 계급에 속한다. 은행의 VIP 고객인 아버지를 두었고, 은행원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집과 차, 가방과 옷을 지니며, 문화적으로 상류층의 생활을 즐긴다. 동시에 은행에서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고, 특유의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수영을 돕기도 한다. 이런 미경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데도 스스럼이 없다.

상수에 대한 감정도, 수영에 대한 마음도, 자신이 가진 것들도 모두 솔직하게 표현하고 드러낸다. 하지만, 때로는 미경의 이런 모습은 그녀의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다른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선사한다. 이는 미경이 자신의 사회계급에 대한 인식을 거의 하지 않은 채 행동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체감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자리 그 자체가 특권임을 미경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들 모두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능력주의'
  

종현과 수영은 자신들의 계급에 대한 인식 안에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까워진다. ⓒ JTBC

 
이렇게 이 인물들은 자신이 내면화한 사회계급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허용하는 폭을 조절한다. 그런데 이 모두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세계관이 있다 바로 '능력주의'다.
 
계급의 사다리에서 아래쪽에 있는 종현과 수영은 서로를 위로하며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우린 더 행복해질 거예요.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이를 이룰 때 스스로가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즉, 노력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능력주의를 희망으로 간직한다.
 
상수 역시 강남의 반지하 빌라에 살면서 부자 친구들과 어울리던 시절, 오직 '공부'만이 살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한다. 아마도 이런 노력으로 상수는 명문대에 진학했을 것이고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상수 역시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를 기대어 살아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최상층의 미경도 마찬가지다. 부모덕을 누리며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경은 은행원으로 일을 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이런 배경이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미경은 대학 시절에도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공부해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한다. 어느 결혼식에서 미경은 대학 동창에게 "다 갖고 있으면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은 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러자 미경은 상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그냥 인정받고 싶었어. 우리 엄마 아빠 딸로 안 태어났어도 그냥 이대로 잘 살고 있을 거라 영포점 PB팀 박미경으로." (5회)
 
이는 금수저 미경마저 능력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잘 드러낸 말이었다.
  

수영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미경의 집에 모인 4인방. 좋은 만남이지만 어딘가 불편하기만 하다. ⓒ JTBC

 
이처럼 <사랑의 이해>의 인물들은 각자가 형성한 사회계급 세계관 속에서 능력주의로 무장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회 구조 안에서 형성된 이런 가치관들은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8회 수영의 생일파티 장면은 이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장면에서 미경에겐 당연해 보이는 장식과 먹거리, 미경의 선의는 수영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게다가 이들의  대화 주제는 자신들의 능력과 학력을 드러내는 대학 생활이다. 특권층인 미경은 이런 대화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지만, 종현과 수영은 자괴감을 느끼고, 중간계급 상수는 미묘한 불편감을 무마해보려고 애를 쓴다.
 
나는 이 장면이 마치 실제 경험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는 현실의 우리들 역시 각자가 인식한 사회계급과 능력주의의 맥락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인물들의 마음이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현재로선 현실에서와 같이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수영이 부당함에 맞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감당하는"(6회) 삶을 선택한 것, 그리고 "사람들 다 각자의 불행과 상처를 안고 사니까.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섣불리 위로하는 것도 못하겠어"(5회)라는 상수의 말에서 왠지 모를 희망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의 이해>의 인물들이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면화된 계급과 능력주의를 넘어 서로가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져볼 수 있다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사랑의 이해 유연석 문가영 금새록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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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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