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두고 거듭되는 선수들의 부상릴레이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벤투 감독은 지난 11월 10일 아이슬란드와의 카타르월드컵 대비 최종 평가전(11일 오후 8시 화성종합경기장)을 앞두고 온라인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벤투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 선수가 많은 것과 관련해 K리그 일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벤투 감독은 주전 풀백들인 김진수과 김문환의 몸상태를 거론하며 "김진수는 현재 상태가 좋지 않다. 놀랍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이미 FA컵 결승에서 부상을 당한 상태였지만 끝까지 뛰었다. 자칫 월드컵 출전이 무산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 대표팀에 소집된 이후 팀 훈련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고 내일 평가전에도 나서지 못한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어 "김진수와 김문환은 이미 우승과 상관없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도 많은 시간을 소화했다. K리그는 최근 승강플레이오프와 FA컵 결승을 모두 2차전까지 치렀는데 경기 간 간격이 72시간 이하였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K리그 일정과 선수관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여기서 벤투 감독은 "선수들의 휴식은 필요없고 돈, 스폰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표팀 감독인 내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8월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길 원하는데, 팀도 선수도 올바른 방식으로 도우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리고 프로구단들을 동시에 겨냥한 듯한 작심 발언을 터트렸다. 평소 인터뷰에서도 차가울만큼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벤투 감독이 이처럼 강경한 발언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사실 무리한 K리그 일정과 선수혹사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예상된 문제였다. 올해 K리그는 카타르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고려하여 개막 일정을 아직 겨울이던 2월에 앞당기면서 선수들은 예년보다 빨리 시즌을 시작해 몸상태를 일찍 끌어올려야 했고, 빡빡한 일정속에 많은 경기수를 소화해야 했다.
특히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팀의 주전이거나 A팀이나 연령별 대회는 출전해야하는 국가대표급 선수들, 심지어 휴식기간에도 올스타전같은 이벤트 경기까지 나서야했던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은 극에 달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인 김진수는 전북과 대표팀을 넘나들며 올해에만 각종 대회에서 50경기 이상을 소화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보냈다.
한국축구는 4년전 2018 러시아월드컵이 열렸던 해에도 무리한 일정으로 인하여 본선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이 쏟아지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올해 K리그가 4년전의 시행착오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선수들의 상황과 컨디션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카타르월드컵이 사상 최초의 겨울월드컵으로 열리게 되면서 이미 장기레이스를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K리거들이 과연 월드컵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줄 수 있을지 우려되고 있다.
또한 대표팀은 최근 에이스인 손흥민이 월드컵을 불과 3주앞두고 소속팀 경기에서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히 손흥민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월드컵에는 출전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벤투 감독으로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도 모자랄 시점에 거듭된 선수들의 부상문제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벤투 감독의 미묘한 이중잣대다. 빡빡한 프로리그 일정으로 인한 선수들의 혹사와 부상 문제는 K리그만이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다. 월드컵이 본래 5-6월에 주로 열렸고 이때는 장기레이스를 치르고 온 유럽 리그 출신 선수들이 피로로 인한 여독과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곤 했다. 올해는 개최지의 기후 특성상 월드컵이 11월에 개막하면서 시즌을 갓 마친 국내파 선수들이 더 지쳐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는 특정 리그나 협회만이 아닌, 극도로 상업화된 세계축구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다.
선수들은 국가대표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프로이고 소속팀의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프로라면 소속팀의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다. 프로 구단들이 대표팀이나 월드컵을 감안하면 선수들을 좀더 배려해주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당연한 의무는 아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유럽 국가나 리그들은 오히려 겨울월드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시즌중에 월드컵이 열리면서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이 더 꼬이게 됐다. 선수들은 월드컵을 앞두고 소속팀 경기에 나섰다가 3-4주 정도의 부상만 당해도 회복시간이 부족하여 자칫 월드컵 출전 자체가 날아갈 수 있다. 바로 얼마전 손흥민이 겪었던 상황이다. 또한 선수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며칠 쉬지도 못하고 다시 리그로 복귀해야하는 상황이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이나,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등은 기형적인 월드컵 일정이 초래한 폐해에 대하여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런 모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벤투 감독은 손흥민같은 핵심 유럽파 선수들이 소속과 대표팀을 오가는 무리한 일정으로 혹사 논란이 불거졌을때는 가만히 있었다. 부상을 당한 손흥민을 무리해서 대표팀에 차출하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도 무산된 적도 있었다. 벤투 감독은 유럽 리그 일정이나 프로구단, FIFA(국제축구연맹), 유럽축구연맹 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다른 국가의 대표팀 감독들도 월드컵같은 큰 대회를 앞두고 자국의 대회 일정이나 협회의 지원 문제를 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는 간혹 발생한다.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이고 최소한 일관성이 요구된다. 선수보호가 명분이었다면 국내파와 해외파, K리그와 유럽리그에 대하여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또한 대표팀과 프로리그는 상호 공존하고 협력하는 대상이지, 대표팀과 월드컵이라고 해서 프로팀과 리그가 무조건 양보하고 협력해야하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다.
무엇보다 벤투 감독이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한국축구를 저격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진운과 객관적인 전력을 고려했을 때 16강진출이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럴때일수록 끈끈한 내부 결속이 필요한 시점이지, 대립각을 세우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모양새는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협회는 벤투호가 부진하거나 각종 논란에 휩싸였을때도 흔들림없이 벤투 감독을 신뢰했고, 소속 구단들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선수 차출에 최대한 협조해왔다. 이제와서 그동안의 희생과 배려는 무시하고 자국 리그와 협회를 비판하는 언행은 그리 좋은 자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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