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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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레이건 정권의 출범과 함께 CIA는 다시 부활한다.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막강한 정보력과 비밀공작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춘 CIA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니카라과의 1979년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한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12월, CIA 주도로 니카라과에 대한 비밀공작을 추진하는 기밀문서를 승인한다.
CIA는 반군단체 콘트라를 후원하여 산디니스타 정부에 맞섰다. 콘트라는 친정부 세력으로 의심되는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대량학살하는가 하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약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미국 정부는 이를 알고도 콘트라를 사실상 묵인했다.
심지어 콘트라는 라틴아메리카에 마약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미국에 코카인을 밀반입하여 유행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이 공공연하게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뒤에서는 마약과 테러 조직을 후원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보수주의자에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의 본심은, 마약보다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미 의회는 레이건의 콘트라 후원 정책에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레이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방송출연과 캠페인을 통하여 콘트라를 "자유의 투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존재"라고 미화하며 후원을 독려했다. 1986년에는 결국 레이건의 의지 대로 콘트라에 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같은해 11월, 레바논의 한 신문사인 <아쉬 시라>의 보도를 통하여 "미국이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를 후원한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정부는 30여 명의 민간인이 헤즈볼라군에 생포된 사건을 계기로, 인질석방을 위하여 헤즈볼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란에게 접근한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었던 이란은 미국에 무기판매를 조건으로 제시했고 레이건은 이를 수락했다.
이는 레이건이 "테러국가와 협상은 없다"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고 이란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여기서 얻은 자금이 다시 콘트라 반군에게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게이트다.
레이건은 이 사건으로 한때 탄핵위기까지 몰렸으나 "자신은 모르게 수행한 활동"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정적 증거가 밝혀지지 않아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잃고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그럼에도 여전히 니카라과에 대한 공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반대하는 정당 및 시민단체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원조기금이라는 명목하에 450만 달러를 지원했다.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의 정적인 비올레타 차모로가 니카라과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레이건 정권과 CIA의 집요한 비밀공작은 막을 내렸다. 또한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했던 CIA의 비밀공작 규모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니카라과를 비롯하여 CIA가 개입했던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후로도 정치적 혼란속에서 사회 성장이 늦어지면서 많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CIA의 공작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질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실체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정치공작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발전에 큰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렛은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적 사고는 살아남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21세기 현대사회가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미국의 역할과 지나간 역사가 주는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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