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헌트> 스틸컷영화 <헌트> 스틸컷
영화 <헌트> 스틸컷
이정재 감독이 받아들인 예정된 패배
<헌트>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다. 제대로 된 심판을 받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독재자에 대한 원한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탓에 방콕 총격전에서는 타란티노의 작품처럼 대체 역사의 쾌감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이정재 감독은 과감히 예정된 패배를 받아들인다.
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지만, 그 결과는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의 상처였다. 영화상에서 제공된 정보로 판단하자면 정도나 평호의 원래 계획이 실행됐어도 남는 건 북한의 적화통일 또는 군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신군부의 출현이라는 미래뿐이다.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는 선택지를 위해 승리를 바랄 순 없다. 실제로 한국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또 다른 김재규를 새겨넣는 대신 직선제라는 성취를 얻어냈지 않은가.
모든 사건이 종료된 후. 평호는 남해의 절간으로 피신한 조유정을 찾아가 새로운 여권을 건네며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일찍이 평호에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멍청하다'라며 '독재자보다 독재자 밑에서 일하는 게 더 나쁘다'라고 했던 유정은 과거와 선을 긋고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다.
평호와 정도가 꿈꾸지 못한 그곳은 안기부도 없고 주체사상도 없는 새로운 세상이다. 어쩌면 혁명은 진보가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마지노선을 긋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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