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연극 <순교> 공연 한 장면
극단 돌파구 제공 (c)_이강물
"<나는 살인자입니다>(2019,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호시 신이치의 세계가 배우의 신체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됐다면, <순교>에서는 호시 신이치의 텍스트를 배우의 발화로 관객이 상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인철 연출가는 연출노트에서 이 작품을 무대화한 비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엇보다 연출가가 이번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을 알기에 앞서 이 연극의 원작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SF소설가로, 단편 소설보다는 '쇼트-쇼트(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소설 형식)'의 개척자로 불리는 호시 신이치(1926~1997)의 동명의 소설 '순교'를 무대화했다. 전 연출가가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나는 살인자입니다>에 이어 이번에도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연이어 들고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
작가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은 짧은 형식이 독자들은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지만,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보기만큼 얕지 않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여성혐오, 폭력, 성별 구분 등과 같은 세상에 남아있는 '통속성'을 배제하고, 지명이나 인명 등 고유명사를 쓰지 않는 특징도 보여왔다. 이것은 전 연출가가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무대로 올리는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순교>의 무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여러 개의 의자들. 그밖에 무대장치나 설치물은 어느 것도 볼 수 없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 놓은 의자들과 배우의 음성만 존재할 뿐이다. 연극은 출연자의 동선만으로 소극장을 입체적으로 채워나갔다. 심지어 극중 중요한 장치로 부각되는 '발명품'조차 관객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 다만 천장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조명에 의존해 자신의 상상만으로 그릴 뿐이다.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을 관객에게 맡긴 효과를 통해 66좌석을 채운 관객들은 비로소 무대의 완성에 방점을 찍게 된다. 오직 보고, 듣는 것만으로 무대를 완성해나가는 이 연극은 거추장스러운 부대장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SF소설이라해서 최첨단 장비를 경험할 것이란 상상을 보기좋게 뒤집었다. 오직 원작자의 구절이 배우의 말소리로 옮겨오는 '낭독극'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연극을 보는 것인가? 책을 읽는 것인가? 관람 기법을 두고 혼란에 빠질 무렵, 과할 것 없이 잔잔하게 내리쬐는 조명은 거추장스러운 무대장치 이상의 효과를 체감할 것이다.
재공연에 새롭게 투입된 김석주, 권정훈, 이진경, 문수아 등 네 명의 나즈막한 발화만으로 작품의 대사를 전달한다. 객석을 바라보는 관객은 원형극장에 앉은 듯하다. 마치 마당극에 둘러싸인 관객의 몰입감 처럼 무대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배우는 관객과 같은 동선과 함께 호흡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이 허무는 장소에서 연기는 진행된다. 즉, 관객은 객석에 앉은 채 남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발화와 강력한 연결을 통해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나만의 SF연극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초연 이후 재공연하는 이 연극은 지난 19일부터 오는 4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계속된다. 'SF연극'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SF소설을 무대화한 것도 있지만, 작품의 제작과정에서도 이런 특징은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극단 기획전 '돌파구 우주극장-SF낭독공연'에서 낭독극으로 선보인 이후 정식으로 초연됐다. 특히, 젠더와 소수자를 주제로 리서치하면서 공연에 맞는 배리어프리를 시도하고 있는데, 전회차 한글자막이 제공되며, 극이 시작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대와 배역, 의상 등 시각정보를 설명하는 음성해설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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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