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렐 마더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현대 스페인 영화를 상징하는 감독이자 '거장'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패러렐 마더스>는 감독 본인의 인장이 찍혀져 나온 것 같은 그런 영화다. 감독의 팬이라면 도입부의 감각적 사운드와 현란한 총천연색 이미지 연출에서부터 감독의 색깔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쉽게 간파할 정도다. 소위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 중 일부는 과거의 성공작 변주나 심지어 답습에 그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되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번 신작은 그런 노파심은 떨쳐놔도 좋을 법하다.
히피였던 어머니가 제니스 조플린의 열혈 팬이라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그리고 어머니가 요절하는 바람에 할머니 손에 큰) 주인공 야니스는 역시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았다. 그녀는 어릴 적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보며 배우를 꿈꿨다고 한다. 지금은 감독의 뮤즈로 공인받는 관계이니 '성덕(성공한 덕후)'의 표본인 셈이다. 그런 페넬로페 크루즈는 물론, 눈썰미 좋은 이들이라면 대번에 알아볼 반가운 얼굴로 감독의 전작 여러 편으로 각인된 로시 드 팔마가 야니스의 오랜 고향친구로 등장하는 것도 반갑다.
익숙한 얼굴만 답습하지도 않는다. 감독이 새로 발굴한 신예 밀레나 스밋은 복합적인 관계로 야니스와 얽히는 아나 역을 맡아 영화에 신선한 변주를 더한다. 영화에서 세 번째 'Mother'에 가까운 비중 있는 캐릭터를 담당한 배우도 눈여겨볼 만하다. 키아누 리브스와 <구름 속의 산책>에서 공연했으나 이후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크게 눈에 띄지 않던 아이타나 산체즈 기요가 아나의 엄마 테레사로 등장한다. 오랜만에 근황을 확인하는 반가움과 동시에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면 올해 우리나이로 49세인 페넬로페 크루즈는 엄청난 동안이다)
영화 속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의 가이드 격인 아르투로 역을 맡은 배우 이스라엘 엘레할데는 묘하게 페넬로페 크루즈의 현재 남편(이자 그 역시 스페인을 대표하는 배우이기도 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느낌이 풍긴다. 오래 함께해온 신뢰 넘치는 동료들에 새로운 얼굴들이 충원된 튼튼한 진용은 작품에 신뢰성을 더한다.
2_거시와 미시담론의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다
영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이야기를 터무니없이 자연스레 하나의 큰 그림으로 버무려낸다. 거시담론은 스페인이 겪었던 현대사의 상흔에 대한 기억이다. 상당히 직접적으로 해당 소재를 영화의 도입과 마무리에서 강렬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어머니로서 두 주인공이 겪게 되는 기막힌 실존에 관련된 숙제가 종횡으로 서로 교차한다. 이 중층적인 구조를 통해 영화의 긴장도와 몰입을 거의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시나리오 연출이다. 웬만한 감독이면 과욕을 부리다 나가떨어지거나 '의도는 좋았다'에 그치기 딱 좋은 시도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고난이도 전개라 복잡하기 짝이 없는데도 이야기가 부드러우면서도 팽팽히 당겨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선사하는 재미가 관객의 머리와 가슴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한다. 특히나 야니스와 아나, 두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 극점으로 치닫는 후반 '결정적 찰나' 순간에는 그 긴장감이 장난 아니다.
사실 영화 곳곳에 정교하게 설치된 이야기의 진실성과 배경의 강조점들을 유추해보는 것만으로도 <패러렐 마더스>는 충분히 호기심을 품을 만하다. 이제 막 극장에서 영화가 개봉하는 상황이라, 작품이 선사하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세세히 언급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 입이 근질거리는 것만 같다. 대나무 숲을 찾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힘껏 외치고픈 심정이란 것만 밝혀둔다.
두 명의 어머니가 서로 관계를 이어가며 기막힌 현실에 직면하는 일련의 상황들은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깃감이다. 하지만 거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그런 물고 물리는 치정극은 아침 드라마에서부터 허다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가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이름값에 기대하는 건 좀 더 높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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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스가 아르투로와 처음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게 되는 계기에서 감독은 은근슬쩍 그의 영화에서 적지 않게 소개되어온 스페인 현대사를 소환한다. 야니스는 모계가정에서 성장했다. 증선조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세력인 극우정당 팔랑헤 무리에게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야니스는 자신이 어릴 적 전해들은 희생자들이 암매장된 장소에서 유해발굴을 요청하고자 아르투로와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야니스 자신은 내전의 직접적 피해를 겪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고향마을 이웃들에게서 자자손손 전해져온 비극의 역사는 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사회인식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상태다. 그런 기억을 어떻게 후손들이 잊고 싶어도 그저 시간이 흘렀다고 잊을 수 있을까. 그렇게 야니스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숙제를 짊어진 존재다.
거시적 역사의 기억은 야니스와 고향마을 이웃들 개개인에겐 지극히 사적인 추모의 숙원으로 전환된다. 그런 장치를 통해 여과된 스페인 내전의 현대사는 두 주인공의 기이한 동반자 관계와 그저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두 개의 이야기가 조금만 엉켜버려도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 무리수는 매끄러운 흐름 속에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거장 감독의 연출 솜씨는 실로 일품이다.
영화 속에서 지금 현재는 과거로부터 하나하나 연결된다는 지점은 수시로 강조된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현재 시각만으로는 온전히 측량하기 어려운 복잡한 과거사 청산과 화해 문제에서 출발해 그런 묵직한 주제의식을 주인공들의 미세한 심리변화와 절묘하게 대응시킨다. 그 혼성교배의 결과는 (관객이 발견할) 의미심장한 몇 개의 장면들로 구현되고 있다.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문장은 감독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재차 확인해주는 마침표에 해당한다.
"침묵의 역사란 없다
그들이 아무리 태워버리고
아무리 부서뜨리고
아무리 거짓말해도
인류의 역사는 침묵하지 않는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3_유럽 예술영화에 주목한다면 놓쳐선 안 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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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현대사를 영화 소재로 치환한다면 제주 4.3이나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군사독재 시절 의문사의 기억과 현재의 여성인권 문제 및 연대가 조화를 이루는 격이다. 야니스와 아나는 복합적 감정을 서로 품는 존재들이지만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간극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저 생물학적 나이 차가 아니라 그 시간의 거리감은 세상을 보는 시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야만 미래로 향할 수 있다고 믿는 야니스와 그저 개인의 행복을 원하는, 이미 주위에서 상처를 받은 아나의 시각차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어떻게 화해와 통합에 이를 것인가 숙제의 차원이다. 그 해결과정이 곧 영화의 거대담론과 직통한다.
<패러렐 마더스>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왜 거장인지, 그리고 단지 (사회문제를 벗어난) 미학이나 기교적인 차원을 넘어 현대 스페인 영화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는지 재차 증명한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쟁점과 모성애/로맨스 소재를 결합한 본 작품의 구조 모델을 제대로 구현해낸 한국영화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헤아려보면 <패러렐 마더스>의 완성도와 성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대충 이쯤에서 이렇게 이야기가 반전되겠지 하는 선입견을 기분 좋게 뛰어넘는 파격이 이어진다. 유쾌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통속적 신파나 최루성을 부정하지 않고 적절히 활용하지만 결코 그 관성에 속박되지 않는다. 거장이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카메라와 이야기의 연금술 마법이 어우러지는 난장을 즐겁게 체험해보자.
| <작품정보> |
패러렐 마더스 Parallel Mothers, Madres paralelas
2021|스페인|로맨스/멜로/스릴러
2022.03.31. 개봉|123분|15세 관람가
각본/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페넬로페 크루즈(야니스 역), 밀레나 스밋(아나 역)
출연 로시 드 팔마(엘레나 역), 아이타나 산체즈-기요(테레사 역),
이스라엘 엘레할데(아르투로 역)
수입 찬란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공동제공 어쩌다필름
2021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 볼피컵-여우주연상(페넬로페 크루즈)
2021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페넬로페 크루즈),
음악상(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2022 전미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페넬로페 크루즈)
2022 아카데미시상식 후보-여우주연상(페넬로페 크루즈),
음악상(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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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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