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위드 더 카메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그램
감독이 공모한 7명의 등장인물은 거의 동년배 세대로 보인다. 여성 6명, 남성 1명의 구성기준은 별도로 언급되지 않는다. 제목인 "걸 위드 더 카메라"의 유래는 감독이 개봉 홍보영상에서 밝힌 바대로, 본 사람은 드물지만 그보다 인용은 조금 더 많이 되는 1920년대 소비에트 다큐멘터리의 거두, 지가 베르토프의 대표작품인 "카메라를 든 사나이 Man with a Movie Camera"(1929)에서 차용한 것이다. 감독 혹은 출연자, 아니면 또래집단인 감독과 출연자 양쪽이 공히 인용된 원작품의 'Man'에 대응하는 'Girl'에 속하는 셈이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작명센스다.
7명의 등장인물들은 감독과의 자유 인터뷰를 나누며 시차를 두고 2번의 촬영을 진행한다. 인터뷰를 담는 동영상 촬영과 별도로 1차는 각자의 거처, 2차는 스튜디오와 야외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된 정지사진 촬영은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진행했다. 첫 번째 촬영은 자유롭게 인물들의 평상시 소위 '민낯' 얼굴을 담는다. 그리고 반년의 간격을 두고 이어진 두 번째 촬영에선 각자가 드러내고 싶은 '콘셉트' 형태 촬영으로 진행한다. 필름 카메라를 선택한 건 찍자마자 바로 확인 가능한 게 아니라 1년에 걸친 시간성을 확보해 당사자들의 물리적 시차와 정신적 변화를 유도하려는 계획으로 읽혀진다. 꽤 합리적인 계획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이 평소에 생각해온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외모가 타자들에게 전달되는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토로한다. 그런 반응을 접하며 본인이 기존에 자기 외모에 대해 취해온 입장과 부담감이 돌아가며 소개된다. 요즘 같이 특정 기준에 스테레오 타입이 되어버리는 격동 속의 자아를 일상적으로 그려내는데 주안점을 둔다. 반면에 후반부는 자신이 외부의 기호나 요구가 아니라 주체적 입장과 의지에 의해 보여주고픈 외모의 형태 드러내기를 목적으로 삼는다. 개개인의 외부/타자와 사회를 향한 발언이 촬영의 결과로 발현되는 방식이라 하겠다.
3_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동 세대에 비교적 유사한 지향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주를 이루지만 감독은 영화 속에서 7명의 등장인물에게서 드러난 개성과 지향을 세분화시켜 놓는다. 영화 홍보물에서 7명을 소개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김드보라 - 규칙을 벗어나 자유로운 나
*김우현 - 용기있게 변화하는 나
*신수빈 - 여러 색깔이 묻어 다채로운 나
*제로주 - 완벽하게 내 것이 된 나
*가영 - 좋아하는 것들로 정의하는 나
*예린 -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하는 나
*현지수 - 있는 그대로의 나
등장인물이 다수이다 보니 7명 중에서 전반부부터 눈에 드러나는 이와 상대적으로 묻히는 이가 구분되는 건 필연적이다. 안면인식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거나 영화를 보다가 깜빡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낭패를 겪은 이들이라면 휙휙 주인공이 바뀌는 전개 때문에 상황을 놓칠 수도 있다.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개별 캐릭터를 각각 구분하는 건 크게 문제는 없는 흐름이지만 장편 기준으론 매우 짧은 편인 60여 분 분량 속에서 7명 전원의 이야기를 구별해 기억하기는 좀 난제로 느껴진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분량을 할애해야 하는지라 전개가 꽤 빠른 편이라 특정 캐릭터들에 관심도가 편중되는 지점은 크게 개선되진 않는다. 감독의 배려 부족이라기보다는 캐릭터 개개인에 대한 주목도 편차가 그 원인에 가까워 보인다.
타인에 의해 규정당하고 사회적으로 설정된 부당한 틀에 강박된 개인의 외모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파헤쳐보자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기성사회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듯)등장인물들의 (사회적 통념 기준) 외모는 각 개인들에게 여러 형태로 영향력을 미친다. 자신의 외모를 무기화할 수 있는 이와 없는 이가 7명 중에서도 구분되고 있었다. 이성에게 환영받는 외모의 소유자는 철저히 타자의 기호에 맞춰 자기 외모를 꾸미도록 길들임 당한다. '꾸밈 노동'의 출발점인 셈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7명은 각자의 차별화된 입장과 방식으로 기성질서에서 요구받아온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부정하거나 돌파하고픈 공통적 욕망을 하나둘 드러내기 시작한다. 동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자가 가진 조건에 따라 대응방식은 다소간 차이가 난다. 자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이들은 자기를 드러내기 보단 감추고 무색무취한 인간형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외모의 강자가 아닌 약자로서 어차피 경쟁이 힘드니 소극적으로 개조되는 것이다. 자신이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이들은 그와 반대로 반항적이나 위악적인 형태로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벗어나려 도발적으로 나서기도 한다.
'저항'을 택한 이들도 대응방식은 차이가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색깔이나 우상파괴를 집요하게 시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사회적으로 환영받는 외모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거나 일그러뜨리는 형태의 도전을 택하는 이도 있다. 그런 개별적 특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천천히 분류하기엔 작품 호흡이 조금 숨고르기 버겁긴 하지만) 특정세대를 도매금으로 단정하지 않고 수많은 사례유형들의 총합으로 보는 종합적 시야로 확장된다.
감독과 또래 출연자들은 지금 사회에서 개인 외모의 위상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내내 다채롭게 풀어낸다. 이전 세대의 잣대로는 쉽게 측량하기 힘든 현재성이다.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이 상당부분 수정되어야 할 이유가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될 테다. 다만 외모가 갖는 사회적 자본 측면에 크게 공감이 없는 이라면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동의되지 않고 산만하게만 다가올 수 있다.
2회 차에서 주인공들은 각자가 보여주고픈 콘셉트 촬영을 감행한다. 각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구하는 과정 가운데 사진의 배경과 복장을 선택하는 모습들은 흥미로운 경우와 다소 치기어리거나 혼란스러운 부류가 혼재돼 있다. 인물 개개인의 자기객관화 차이를 감독이 굳이 밸런스 균형을 잡으려 의도치 않은 점이 커 보인다.
(사회통념상) 상대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이는 의식적으로 그 우월성을 부정하려 시도한다. 화장을 일절 하지 않음은 물론 의도적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한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약한 이는 꽤 공들여 차려입은 패션을 통해 정통적인 방법 - 자기 관리 철저 - 으로 약점을 상쇄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혼란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자신을 상징하는) 특정 컬러를 고수하던 이는 자신의 지향이 예상외의 결과로 타인들에게 소개되자 의도치 않은 상황에 당혹스러워한다. 보수적 시각에선 신성모독에 가까운 도발을 꾀하던 출연자는 아직 본인이 떨치지 못한 '모태신앙'의 금기에 망설이고,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자신이 만족하는 사진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타자가 판정해주던 외모 기준을 '셀프 언박싱'하는 행위는 '껍질을 깨는' 것에 다름없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시도에 도전하려는 이들은 자연히 주변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긴장해 놓치거나 실수를 하곤 한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도 하다. 그런 다양한 결들을 미세하게 현미경 관찰하듯 포착할 수 있다면 <걸 위드 더 카메라>에는 흥미롭게 볼 만한 지점들이 꽤 있다.
4_결론에 이르진 못해도 꽤나 흥미로운 시도
▲"걸 위드 더 카메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사 그램
<걸 위드 더 카메라>는 일관된 하나의 결론을 정리해 선보이진 않는다. 친구들끼리 대담하듯 각자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지향과 미래를 위한 시도 과정에서 자신이 몰랐거나 놓쳤던 지점을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1년간의 도전에 대한 자기 & 타인(주로 감독)의 평가를 병렬적으로 쭉 풀어내 늘어놓는 식에 가깝다. 확실한 결론을 의도한 게 아닌 프로젝트라 자연스러운 결말이지만 어떤 정리나 해석을 기대한 이들에겐 산만하거나 밋밋한 마무리일 수 있겠다.
해당 작품은 학계를 놀라게 하는 파격적 새 학설을 터트리는 식의 결과물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논문으로 치자면 참신한 시도와 끈기 있는 작업과정을 통해 정리한 조사통계 결과가 흥미로운 사례를 여럿 찾아낸 사례라 하겠다. 아직 기성이론을 온전히 뒤집어엎을 하나의 담론으로까지 정리되진 않았지만, 그 예비가 될 자료 뭉치를 보는 느낌의 결과물이다.
<작품정보>
걸 위드 더 카메라 Girl With The Camera
2020|한국|다큐멘터리
2022.01.20. 개봉|69분|12세 관람가
감독 안희수
주연 김드보라, 김우현, 신수빈, 제로주, 최가영, 최예린, 현지수
배급 ㈜영화사 그램
2020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 장편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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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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