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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목숨을 끊었고, 나는 난민이 되기로 결심했다

[리뷰]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

21.09.01 14:34최종업데이트21.09.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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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8번째를 맞은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일상의 특별함을 담다”라는 주제로 전 세계 29개국의 64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합니다.[편집자말]
20대, 한참 젊음이 무르익을 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불투명한 현실의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태어난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그들의 삶은 다른 선택을 낳는다. 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EIDF)의 글로벌 경쟁작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격변을 겪고 있는 칠레, 우간다, 홍콩의 세 젊은이를 주목한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EBS

산티아고의 미래를 지키고 싶습니다- 라옌 

라옌은 칠레 산티아고에 사는 23살의 여성이다. 칠레는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는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라옌은 자신의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라옌은 오늘도 방독면을 쓰고 거리로 나선다.  

왜 라옌은 거리로 나섰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칠레의 정치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칠레는 피노체트 대통령 때 만들어진 헌법에 기반하여 모든 공공재들이 민영화됐다. 교육, 의료 서비스는 물론, 수도까지. 그만큼 사회적 불평등도 극심하다.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사람들이 프라이팬과 나무 숟가락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모든 요금을 더는 내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선 칠레 시민들에게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최루탄과 유독성 물대포를 쏘아댔다. 얼굴에 직접 고무탄을 쏘아대는 바람에 눈을 잃은 사상자가 수백 명이다. 라옌의 아버지 역시 허벅지에 고무탄이 박혔다. 시위에 참가하던 평범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아벨 아쿠냐, 22번째 피해자이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EBS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입니다 - 페퍼 

거리로 나선 젊은이는 칠레에만 있는 게 아니다. 페퍼, 22살 홍콩의 젊은이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검은 옷, 홍콩 시위 현장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젊은이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그녀는 2019년 6월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다. 한 국가 두 체제가 허용된다는 전제하에서였다. 영국에 오랫동안 '조차'되어 왔던 홍콩은 민주주의 체제였다. 언론, 출판의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 반환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홍콩인으로 살아왔던 젊은이들에게 중국식의 사회주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한 국가 두 체제는 말뿐이었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심지어 홍콩 인권 운동가들을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송환법'이 통과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페퍼는 체포가 두렵다.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경찰이 무엇보다 무섭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직 페퍼가 시위에 참여하는 걸 모르는 친구,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 더 그를 힘들게 한다. 

페퍼 또래의 시위 참가자 젊은이들은 신세대답게 구글 캘린더, 지도 등을 이용해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을 상대하지만, 지는 싸움은 힘들다. 한바탕 시위가 휩쓸고 지나가면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난 체포되지 않았을까, 동료가 체포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시위 현장에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집에 가서 뉴스를 보면 눈물이 흐른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생활, 사랑하는 이와도 헤어져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바뀌는 게 없는 현실이 페퍼와 같은 젊은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미래의 아이들에게>의 한 장면EBS
 
기후 위기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 힐다 

정치·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칠레, 홍콩과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곳도 있다. 바로 아프리카의 우간다. 우간다의 대학생으로 코펜하겐 기후 회의에 참여한 여대생 힐다에게 왜 하필 기후 변화 운동에 뛰어들었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22살의 힐다는 "동생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지 않기를 바라서"라고 답한다. 우간다 젠키라 마을 와키소 구역에 힐다네 농장이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군것질거리를 사다달라고 졸라 '사탕'이란 별명을 얻은 밝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가정은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 풍파를 겪게 된다. 

큰 농장을 일구던 힐다네 가족은 비가 오지 않거나, 아니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다. 해마다 더 나빠지는 상황에 결국 힐다네는 농장을 팔 수밖에 없었다. 농장을 판 돈으로 생활비를 감당했지만 돈이 없어 학교를 4개월 정도 쉬기도 했다. 누구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체감한 힐다는 대학에 들어온 후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해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가한다.

우간다는 한때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렸다. 하지만 이제 그 아름다웠던 우간다의 강은 플라스틱 강이 되었다. 젊은 힐다가 앞장서 강의 쓰레기를 치우는 캠페인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우간다 내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은 미흡하다. 심지어 교수님마저 신의 계획을 들먹이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다.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칠레, 홍콩, 우간다라는 세 국가의 젊은이들을 통해 21세기의 세계를 조명한다. 21세기에도 우리는 불평등과 반민주적인 폭압적 체제, 그리고 기후 변화의 위기 속에 놓여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고자 오늘도 라옌은 거리로 나선다. 사람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다리에 고무탄이 박혀 수술을 기다리는 아버지 세대를 위한 그만의 빚을 갚는 방식이다.  

반면, 페퍼는 난민이 되었다. 페퍼의 가장 친한 친구 블랙 워터는 체포되어 여전히 구금 상태이다. 또 다른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향이었지만, 페퍼와 같은 젊은이들의 투쟁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페퍼 역시 스스로 난민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것이 여전한 21세기의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IDF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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