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은 덕출이 선물한 야구글러브를 보며 장남과 가장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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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변화한 것은 덕출과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서 지내온 아내 해남이다. 4회 발레복을 입고 있는 덕출의 모습을 본 성산은 "발레보다 자식이 중요하냐"며 덕출에게 선을 넘은 분노를 터뜨린다. 이 장면을 목격한 해남은 가장, 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덕출이 살아온 과정을 떠올린다. 덕출이 지닌 고유한 삶의 이야기를 상기할 수 있었던 해남은 덕출을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이렇게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그러니까 그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들을 떠올리는 것은 그 사람을 역할이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덕출이 가족들의 반대에서 자기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덕출과 해남의 태도는 서서히 다른 가족들에게도 스며들어 각자의 이야기를 써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기업 입사만을 노렸던 은호(홍승희)는 아버지 성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 애란(신은정) 역시 오랫동안 수행해 온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에서 빠져나와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해간다. 성숙(김수진)은 오랫동안 애써온 임신을 포기하는데, 이는 남들처럼 아이 낳고 살고자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한계를 수용하며 보다 고유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도 볼 수 있다.
의사의 길을 그만두었던 성관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상태에서도 '자기대상'을 포기하지 않는 덕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찾는다. 아마도 성관이 의사를 그만두었던 것은 원하는 것이 있기보다는 의사로서 느끼는 회의감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을 테다. 때문에 성관은 병원을 그만 둔 뒤에도 이렇다 할 길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덕출을 보며 그는 시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고, 의사가 삶에 시간을 더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복귀를 결정한다. 의사로서 소명을 찾은 성관은 분명 전과는 다른 자세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완고하게 가족주의를 실천했던 성산도 마침내 변화한다. 11회 성산은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덕출은 성산에게 야구글러브를 선물한다. 성산은 덕출이 선물한 야구글러브를 통해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기억해 낸다. 가장 혹은 장남으로서의 역할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본 성산은 아내 애란의 응원에 힘입어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는 어릴 적 꿈에 조금 더 가까운 야구단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기억해주는 가족
▲덕출과 채록은 마침내 함께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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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심덕출 할아버지의 가족은 우리라는 한 덩어리에서 벗어나 너와 나가 됐다. 그리고 12회 덕출의 공연을 관람하며 마음 힘껏 한 사람으로서의 덕출을 응원한다. 또한 덕출의 모습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다. 성산은 공연을 본 후 딸 은호에게 "너도 니가 좋은 거 해. 니가 행복한 거"라고 말해준다. 이는 덕출의 모습을 통해 자기존중을 일깨운 가족들이 타인존중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드라마는 마지막 회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아닌 각자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가족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각자의 삶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며 때로는 그냥 지켜봐주는 가족들의 모습은 첫 회 "가족이니까"라며 서로 구속했던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보였다. 이렇게 덕출 할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족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가족주의에서 벗어나 너와 내가 모두 존중받고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탄생시켰다.
드라마의 말미. 3년이 지난 후 알츠하이머 증세가 더욱 심해진 덕출의 모습이 그려진다. 덕출은 해남과 옆집으로 이사 온 딸 성숙의 돌봄을 받으며 지낸다. 덕출은 "내 살 곳은 내가 정한다"며 요양원 입소를 희망했었지만, 아마도 가족의 간곡한 부탁에 그리하지는 못했던 듯 싶다. 하지만, 덕출을 돌보는 가족의 모습은 그다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는 가족주의 안에서의 의무가 아닌 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으로서 행한 돌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날아오른 채록이 귀국했을 때 이들은 마치 가족을 맞이하는 것처럼 한 자리에 모인다. 우리로서의 가족이 중요했더라면,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없는 채록을 이처럼 환대해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의 개별성을 회복한 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시간에 함께한 채록을 가족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이는 가족주의에서 벗어났을 때 더욱 개방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는 채록의 반복된 대사에 그 답이 있었던 것 같다. 채록은 덕출의 알츠하이머를 알게 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할아버지 괜찮아요. 제가 할아버지를 기억하면 돼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게 가족 아닐까.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시간에 함께 하며 그 모습을 기억해주는 것. 이럴 때 가족은 서로가 써내려가는 이야기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알게 해준 심덕출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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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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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선택한 할아버지, 지긋지긋한 가족주의를 해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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