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의 차영(전여빈)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후회를 상대방에 대한 복수로 치환한다.
tvN
이처럼 후회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고, 한 개인의 삶을 인생 전반에 걸쳐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모두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후회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후회스런' 순간에도 감사할 것을 찾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를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후회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변인으로 '시간관'을 든다. 시간관이란 과거나 미래 등 특정한 시간대에 대한 지향 또는 시간에 대한 태도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선호의 표현이다. 시간관은 비교적 안정적인 개인의 심리적 특징이지만, 자신의 시간관을 인식하고 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우리가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시간은 항상 흐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관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시간관은 크게 과거지향적, 현재지향적, 미래지향적 세 개의 시간관으로 나뉜다. 과거지향적 시간관은 다시 '과거긍정적 시간관'과 '과거부정적 시간관'으로 구분되는데 '과거긍정적 시간관'을 지닌 이들은 과거를 따뜻하고 감상적인 태도로 대한다. 반면, '과거부정적 시간관'은 과거를 부정적이며 혐오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현재지향적 시간관은 지금 이 순간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재쾌락적 시간관'과 현재를 체념하듯 살아가는 '현재숙명적 시간관'으로 나뉜다. '미래지향적 시간관'은 다른 시간관과는 달리 단일요인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현재에서의 만족을 지연시키는 태도를 말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후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부정적 시간관'에 기반해 살아간다. 드라마 속 인물들 역시 그랬다. <시지프스>의 태술은 기술로는 미래를 지향하지만 마음엔 과거 속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득 차 있다. 시간을 되돌려 미래에서 온 사람들 역시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안녕? 나야!>의 하니는 몸은 37살 어른이 되었지만, 심리적으로는 17살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자책에서 한 발도 성장하지 못했다. <빈센조>의 빈센조 어머니 역시 그녀의 정신적 자리는 과거 자녀를 버린 그 시점에 머물러 있다. '후회'하며 살아가는 이 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갈지라도 충만히 누리지 못하며 미래도 희망하지 않는다.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기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후회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후회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후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간관'에 균형을 잡는 것으로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균형잡힌 시간관'을 연구한 웹스터(Webster)에 따르면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회상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으로 시간관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균형잡힌 시간관'을 '과거와 미래 모두에 대해 생각하는 빈번하고 동등한 경향성'으로 정의하면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는 균형잡힌 시간관을 통해 더 많은 유능감, 삶의 만족,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빈센조>의 차영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후회를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면서 극복해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차 있던 차영은 분노를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자들에 대한 복수로 치환한다. 이 복수의 과정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의 진정성을 이해한다. 과거의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지각하게 된 차영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로 결심한다. 차영이 '후회'에 파묻히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과거를 긍정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시간관으로의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안녕? 나야!>의 하니 역시 17살 하니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이전까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사건만 떠올리던 하니는 조금씩 '빛났던' 자신의 모습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인다. 반면, 자포자기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는 바꾸어 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6회 하니는 "이제 더 이상 그 애한테 부끄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후회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하니 역시 과거부정적 시간관에서 벗어나 과거의 긍정적인 면을 기억하고, 미래지향적으로 관점을 옮김으로써 지독한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시지프스>의 태술은 여전히 과거 형에 대한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과거를 찾아나서며 헤매고 있다. 때문에 태술은 여전히 괴롭다.
▲<안녕?나야>의 하니(최강희)는 17살 때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절망감에 빠져 지낸다.
KBS
'후회'는 과거부정적 시간관에 기반을 둔 사후가정적 사고로, 분노와 절망 같은 괴로운 감정들을 유발한다. 하지만, 잠시만 멈춰 생각하면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후회하는 마음 속엔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후회도 짙어진다. 그러니 '후회'로 인해 괴로울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후회'의 이면에 담긴 진짜 마음이다. 그리고 과거에 내가 지녔던 힘, 긍정적인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을 활용해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하며, 지금 여기서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후회'는 '후회할 일' 이 아닌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세 드라마 속 인물들의 행보가 '후회'를 '후회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길,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후회를 삶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이현주, 정남운(2020), 시간관과 주관적 만족의 관계에서 감사와 후회 그리고 정서의 매개효과 : 중년여성을 대상으로, 한국심리학회지 : 여성, 25(2)
이송희(2018). 반추와 우울의 관계에서 균형 잡힌 시간관의 조절효과. 청소년학 연구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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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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